전체 글1210 [독일] 마르틴 루터의 비텐베르크 귀향 1521년 4월. 보름스 제국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루터가 비텐베르크를 출발했다. 그때까지는 그가 주장했던 교회개혁은 신학적 이론 단계였을 뿐이었다. 현실적으로 개혁운동은 구체적으로 시작되지 않았고 가시적인 변화는 아직 아무것도 없었다. 보름스 제국회의에서 루터는 독일 황제 앞에서도 그의 주장을 조금도 굽히지 않았다. 그 결과 그는 10개월 동안 은둔생활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루터가 바르트부르크 성에 피신해 있던 기간에 비텐베르크에서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다. 그것은 루터가 없는 동안 일부 과격한 사람들이 주동이 되어 충분한 준비나 계획 없이 성급히 교회개혁을 시작한 것이었다. 이러한 개혁운동의 중심 인물은 루터의 동료인 비텐베르크 대학의 카를슈타트(Karlstadt) 교수였다. 그는.. 2010. 4. 29. [독일] 마르틴 루터의 '밧모섬' 시절 루터의 행방과 생사가 불확실해 뒤숭숭할 때 비텐베르크의 루터 친지들은 정체불명의 서신을 받아보게 된다. 극비로 전달된 서신을 받아본 친지들은 깜짝 놀랐다. 루터의 친필 편지였다. 발신지는 ‘나의 밧모섬으로부터’로 되어 있었다. 밧모섬이란 신약성경 맨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요한이 유배되었던 섬이다. 루터는 있는 곳을 숨기고 함축적으로 밧모섬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루터가 죽지 않고 살아있구나!” 루터의 친지들은 기쁨의 함성을 질렀다. 그러나 마음놓고 기쁨을 표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1521년 4월 독일 남부 보름스에서 열렸던 어전 제국회의에서 루터는 교회개혁에 관한 종래의 주장을 조금도 굽히지 않았다. 마침내 독일 황제는 로마 교황청의 강요에 의해 루터를 독일제국의 ‘범죄자’로 정죄하는.. 2010. 4. 29. [독일] '보름스의 황제칙령'과 마르틴 루터 1521년 신년초 마르틴 루터는 마침내 가톨릭 교회로부터 ‘파문’ 당했다. 한편 이때를 전후해서 독일에서는 또 다른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 전개되고 있었다. 그것은 1519년 스페인의 왕이었던 카를 5세가 독일의 새로운 황제로 선출된 것이었다. 그가 독일 황제의 자리에 올랐을 때 그의 나이는 불과 19세밖에 되지 않았다. 그는 독일어도 할 줄 몰랐고 독일의 내부 사정에 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는 인물이었다. 그는 독일의 황제가 되자 보름스(Worms)에서 ‘제국의회’를 소집했다. 독일의 내부사정을 알 필요가 있었고 특히 당시 팽창일로에 있었던 오스만 제국에 대한 대책 마련 등 현안을 의논하기 위해서였다. 1521년 1월말 황제의 도시 보름스에서 제국의회가 열렸다. 그런데 회의가 시작되자 카를 5세로서는.. 2010. 4. 29. [독일] 루터와 가톨릭 교회의 대결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전 3:1∼2) 구약성경 전도서의 말씀대로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하나님은 역사의 때를 정하시기도 하고 때로는 역사의 때가 이르도록 기다리시기도 한다. 가정해서 마르틴 루터가 그의 시대보다 100년전에 교회개혁 운동을 일으켰다면 그래도 성공할 수 있었을까? 오늘날 역사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은 성공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한다. 16세기 루터의 교회개혁 운동이 성공한 데는 여러 가지 역사적 요인이 있었겠지만 그 중에 첫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인쇄술의 발명이었다.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까지는 성경을 비롯한 모든 책과 기록은 손으로 필사되었다. 필사본 시절 새로운 지식의 확산이나 정보의 전달은 극히.. 2010. 4. 29. [독일] 십자군과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된 면죄부 판매 1517년 초엽 중부 독일지방에 뛰어난 웅변으로 명성을 떨치던 수도사 ‘테첼’(Tetzel)이 교황의 휘장을 앞세우고 나타났다. 교황의 이름으로 면죄부를 팔기 위해서였다. 특유의 언변으로 그가 쏟아내는 말들은 듣는 이들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여러분 들으시오. 여러분의 사랑하는 부모형제가 연옥의 고통 중에 ‘살려 달라’고 부르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 귀를 열고 여러분의 아버지 어머니가 울부짖는 소리를 들어 보십시오. ‘나는 너를 낳아주었고 키워주었고 재산까지 남겨주었건만 너희는 우리를 이 고통받는 곳에서 구해주지 않는구나. 이 뜨거운 불꽃 속에 우리를 그대로 놔둘 셈이냐?’ 여러분은 고통 받는 그들의 영혼을 구해낼 수 있습니다. 찰랑하고 동전이 돈궤에 떨어지는 순간 연옥에서 고생하던 영혼.. 2010. 4. 29. [독일] 폭풍속의 서원, 교회사 새장을 열다 하나님은 여러 가지 모양과 방법으로 그의 뜻을 인간에게 전하신다. 기도하는 조용한 골방에서 ‘세미한 음성’을 들려주시기도 하고 지축을 흔드는 천둥과 번개로 그의 뜻을 전하시기도 한다. 1505년 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중부 독일의 7월 어느 날. 대학생 차림의 젊은이가 연방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분주히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명문 에르푸르트대학에서 법률 공부를 시작한 이 젊은이는 부모님을 찾아뵙고 먼 길을 걸어 대학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에르푸르트에 가까웠졌을 때 갑자기 하늘이 검게 변하더니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날씨는 더욱 험악해지고 순식간에 어둠의 땅이 되어버렸다. 천둥소리가 천지를 뒤흔들고 번쩍이는 칼날과 같은 번개가 하늘을 가르며 사방으로 내려꽂혔다. 공포에 질린 청년은 .. 2010. 4. 29. [이라크] 문명이 활짝핀 '천일야화의 고향' 바그다드 산천초목도 벌벌 떨 만큼 맹위를 떨치던 바빌로니아 제국이었으나 그 종말의 날은 너무도 빨리 왔다. 제국을 일으킨 느부갓네살 왕이 죽자(주전 562년) 왕위쟁탈전이 벌어져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서 제국의 운명은 급전직하로 기울어졌다. 느부갓네살이 죽은 지 23년만에 신흥세력 페르시아(바사)의 공격 앞에 제대로 대항도 하지 못한 채 힘없이 바빌로니아는 무너지고 말았다. 이로써 메소포타미아 지역이 역사의 중심지 역할을 하던 시대는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주전 3000년대 메소포타미아의 남부지역에서 인류 최고(最古)의 수메르 문명이 일어난 이래 바빌로니아 제국이 멸망할 때까지 장구한 기간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고대 근동세계에서 정치와 문화의 중심무대였다. 그곳에서 인류 최초의 문자(쐐기문자)가 만들어졌고,.. 2010. 4. 28. [이라크] 메소포타미아의 제국들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이라크 국토의 중심부를 비스듬히 흐르고 있는 두 개의 큰 강,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사이의 지역이다. 고대로부터 ‘메소포타미아’(강 사이의 땅)라고 불려온 이 지역에 대부분 도시와 인구가 밀집되어 있다. 오늘날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곳도 바로 이 메소포타미아 지역이다. 메소포타미아는 비옥하고 기름진 천혜의 땅이다. 에덴동산도 이 지역에 있었다고 추정할 정도로 좋은 땅이다. 이곳에서 인류 최고(最古)의 문명인 ‘수메르 문명’이 일어났고 이집트 인도 중국과 함께 고대 문명의 발상지이다.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의 고향 우르도 메소포타미아 남부지역에 있었다. 우르는 오늘날 뉴스에 자주 언급되는 바스라와 나시리아 근처에 있었다. 구약성경의 이스라엘 역사는 아브라함이 고대 문명도시 우르를 떠나 황무한.. 2010. 4. 28. [이라크] 아브라함의 고향 갈대아 우르 성경의 기록을 보면 이스라엘 조상 아브라함의 고향은 ‘갈대아 우르’이다. ‘갈대아’는 이라크의 남부지역을 지칭하며 ‘우르’는 그 지역에 있던 고대도시 이름이다. 지금부터 약 4000년전 이라크의 남부지역 ‘우르’에서 아브라함 가족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오늘날 이라크가 신앙의 조상 아브라함이 태어나고 자란 땅인 것이다. 이라크는 우리나라 남북한을 합친 것보다 배가량 되는 크기의 땅이다. 이 땅의 중심부에는 2개의 큰 강이 북쪽에서 동남쪽으로 비스듬히 흘러내린다. 이 2개의 강은 이라크를 종단해 흐르다가 하류에는 합쳐져서 페르시아만으로 흘러들어간다. 오른쪽의 강이 티그리스 강이고 왼쪽 것이 유프라테스 강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 두 강 사이의 지역을 ‘메소포타미아’라고 불렀고 지금도 그 지명이 쓰이고 있.. 2010. 4. 28. [이탈리아] 로마와 서바나 바울은 로마에 복음 전파를 간절히 원했고 하나님은 그런 바울을 죄인의 몸으로 로마로 입성케 했다. 그리고 더욱 간절히 가기 원했던 서바나는 결국 가지 못한 채 로마의 아피아 가도에서 목이 잘려 순교했다. 로마는 나라 이름은 물론 수도 이름도 된다. 도시로서의 로마는 현재 이탈리아의 수도이며 옛 이베리아 반도의 중앙에 있던 로마 제국의 수도이다. 제국으로의 로마는 예수님 당시에 동으로는 유프라테스 강,서로는 라인 강,남으로는 지중해,북으로는 동부 유럽에 미치는 광대한 영토를 소유하였다. 전성기에는 유럽 대륙을 대부분 석권하였으며 아프리카와 아시아까지 세력을 확장한 때도 있었다. BC 735년에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란 쌍둥이의 한 사람인 로물루스가 건국하였다는 전설로 출발한 고대 로마는 세계를 지배했다. .. 2010. 4. 28. [터키] 결심의 항구 드로아 앗소 앗소(Assos)는 오늘날 터키 서쪽 안드라미티움 (Andramyttium)만에 있는 드로아 남쪽의 항구도시다. 이스탄불에서 이곳에 가려면 자동차로 이틀을 달려가야 한다. 나는 모처럼 아들과 함께 9인승 밴을 이용해 드로아와 앗소를 찾아보기로 했다. 이스탄불은 수도는 아니지만 터키에서 가장 큰 도시. 이스탄불은 보스포러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유럽과 아시아 두 대륙으로 나누어져 있다. 유럽쪽의 이스탄불에서 출발한 차는 마르마라(Marmara) 해협을 끼고 서남쪽으로 달렸다. 왼쪽으로 펼쳐지는 해협을 보며 3시간30분 동안 280㎞를 달려가자 터키 본토로 넘어가는 마르마라 해협의 맨 끝에 도착했다. 에세아바트(Eceabat)에서 자동차를 배에 싣고 본토에 도착한 후 다시 남쪽으로 75㎞를 달려 앗소에.. 2010. 4. 28. [터키] 바울의 로마 행 - 무라 바다라 니도 전날 버가를 답사한 후 앗달리아에서 하루를 묵은 후 해안가에 있는 바울의 전도 여행지인 무라(Myra)와 바다라(Patara)를 향해 차를 몰았다. 무라는 앗달리아에서 120㎞ 정도 떨어져 있지만 해안가를 따라 뻗어있는 길은 굴곡이 심한데다 초행길이라 빨리 달릴 수 없었다. 더구나 북쪽으로 펼쳐진 고산지대와 어우러진 바닷가의 풍경이 매우 아름다워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게 했다. 결국 3시간이 걸려서 무라에 도착했다. 무라는 소아시아 남루기아도에 있는 지중해의 항구도시이다. 루기아 도시연맹의 6대 도시 중 하나로 본성은 바다로부터 4㎞ 가량 떨어진 안드라쿠스 강변에 위치했었다. 지명의 뜻은 몰약,불사르다이다. 무라에 들어서자마자 바위를 깎아 만든 무덤들이 이곳의 특징을 한눈에 보여주었다. 고대 중동지역에.. 2010. 4. 28. [요르단] 요르단 오지의 성읍들 오늘날 요르단 지역에 있는 성경의 도시들은 이스라엘 다음으로 많다. 성경에 언급된 도시는 대체로 480곳 이상으로 이스라엘에 절반이 넘는 264여 곳이 있으며 다음으로 요르단에 67여곳이 있어 두번째로 많다. 그리고 이집트 35여곳,그리스 시리아 레바논과 기타 지역 순으로 소재해 있다. 지금까지 ‘성서속 도시 이야기’를 통해 현대 국가별로 비교적 생소한 도시들을 소개했다. 이번에는 본인이 답사한,요르단 지역의 생소한 도시들을 사진 중심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도피성 중의 하나인 길르앗 라못 이곳은 다메섹 남쪽 약 112㎞ 지점,오늘날 이르비드 동쪽 약 24㎞쯤 되는 곳에 있다. 라못 길르앗으로 부르기도 하는 이곳은 요단강 동쪽에 있던 베셀,바산 골란과 함께 도피성(逃避城) 중 하나이다(신 4:43,수20.. 2010. 4. 28. [이집트] 돕가 및 르비딤 애굽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민족의 시내산까지의 여정은 대부분 고대 광산길이었다. 이 광산 중 하나가 오늘날 세라비트 엘 하팀(Serabit el Hatim·Serabit E Khadim)이라 불리는 성경의 돕가(Dophkah)이다. 엄밀히 말하면 이스라엘 민족이 걸어간 길은 돕가 광산 아래의 와디였다. 돕가에 가기 위해서는 시내산에서 서북쪽 지역으로 와디를 따라 가야 하기 때문에 나는 시내산에서 현지 안내인을 찾았다. 다행히 돕가에 가는 길을 잘 아는 형제를 만나 안내를 받았다. 일정을 마친 후 생각해보니 이들을 만난 것은 하나님의 큰 은혜였다. 나는 일행과 이들 형제의 지프를 대여했다. 원래 사막길은 고장에 대비해 차량 2대를 빌려야 했지만 우리는 경비를 절감하기 위해 1대로 가기로 했다. 엘림을 떠난.. 2010. 4. 28. [이집트] 출애굽 여정지 마라 - 엘림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기적으로 건넜다는 홍해(오늘날 이스마일리아 앞 빅터 호숫가)에서 역사적인 하룻밤을 보낸 나는 수에즈 운하 밑으로 건설된 지하 터널을 통해 홍해를 건넜다. 당시 이집트에서 가나안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지중해안을 따라가는 블레셋 길이었으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훈련시키기 위해 홍해 광야길로 인도하셨다(출 13:17).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은 에담(수르) 광야길을 통해 사흘동안 행군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마라에 도착해서도 물이 써서 마시지 못했다(출 15:22∼25). 그러나 나는 자동차로 40여분만에 도착했다. 마라(Marah)는 홍해(수에즈 해저 터널)에서 30㎞ 지점에 소재하는데 오늘날 성경학자들은 옛날의 마라 지역이 오늘의 아윤 무사(Ayun Musa)라고 추측하고 있다... 2010. 4. 28. [이집트] 출애굽 당시의 도시 비돔과 숙곳 출애굽의 출발지인 라암셋에서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은 후 곡식창고가 있었던 비돔을 향했다. 비돔(Pithom)은 애굽 동북부 나일강에서 팀사(Timsah) 호수에 이르는 골짜기 사이에 있는 성읍으로 ‘아톰의 집’이라는 뜻이다. 현재 두 곳이 비돔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 곳은 나일강 삼각주 동쪽에 있는 와디 투메일라트(wadi Tumeilat)에 있는 텔 엘 라타바(Tell el Ratabah)와 다른 한곳은 텔 엘 마스쿠타(Tell el Maskhutah)이다. 1929년 발견된 자료에 따르면 텔 엘 마스쿠타가 더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럴 경우 숙곳은 라타바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숙곳을 비돔과 동일시하는 견해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스쿠타는 1883년 에두아르드 나빌레(Edouard .. 2010. 4. 28. [이집트] 성경서도 생소한 성지 세곳 - 비베셋, 온, 놉 일반적으로 이집트 지역의 성지를 순례하게 되면 카이로 시내에 있는,예수 피난교회와 그 옆에 있는 모세 기념회당,그리고 이집트 고고학박물관,피리미드와 스핑크스를 관광한 후 시내산으로 향한다. 그러나 이집트로 피난 온 예수께서 여러 곳에 피신한 것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나는 그 중 한 곳인 성서의 온(On) 지역을 찾아가기 위해 택시를 잡았다. 온은 오늘날 이집트 수도인 카이로에서 동북쪽으로 11㎞쯤 떨어진 마타리예(Matariyeh) 근처에 있는 텔 후슨(Tell Husn)으로 여겨진다. 헬라어로는 온을 헬리오폴리스라고 하여 출애굽기 1장 11절에 라암셋 다음에 ‘온,곧 헬리오폴리스’라고 기록,동일시하고 있다. 실제로 오늘날 온은 확장된 헬리오폴리스내에 있다. 카이로 외곽 지역의 한 구석에 있어.. 2010. 4. 28. [이집트] 출애굽 출발지 라암셋 라암셋(Rameses)은 애굽의 나일강 하류 델타 동북부에 있던 삼각주의 중앙 부분에 있는 성읍으로 나일강의 타니데익 지류 동쪽에 있는 국고성이며 요새 성읍이다. 이름은 ‘레’(Re·태양신)는 ‘그를 낳았다’란 뜻이다. 바로는 요셉과 그 친족(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애굽에서 가장 비옥하고 살기 좋은 땅인 고센 지역을 정주지로 허락하였는데 라암셋은 고센 지역 중 고정된 한 구역이다(창 47:6,11). 라암셋이 성경에서 유명한 것은 야곱 이후 400년 동안 그 후손들이 거주하면서 이스라엘이라는 큰 민족을 이룬 후 모세의 인도로 애굽을 탈출할 때 출발지였기 때문이다. 라암셋은 이집트의 수도인 카이로에서 북쪽으로 약 250km 떨어진 곳에 있다. 이집트는 다른 국가와 달리 렌터카를 이용하는 것은 매우 위험.. 2010. 4. 27. [레바논] 페니키아 지역의 시돈과 사르밧 시돈(Sidon)은 두로 북쪽 약 40㎞ 지점. 오늘날 레바논의 수도인 베이루트 남방 약48㎞ 지점의 지중해안에 있는 항구도시다. 지금은 사이다(Saida)라고 부르는 이곳을 찾아가기 위해 베이루트를 떠난 차는 지중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달렸다. 오른쪽으로 펼쳐지는 지중해안은 그 옛날 조선술과 무역으로 유명했던 페니키아(베니게)인들을 상기시켰다. 이들은 땅끝이라 불리는 스페인과 포르투갈 지역까지 무역을 확장시켰다. 차는 출발한지 1시간도 채 못돼 성경에는 수로보니게 지역으로 알려진,십자군 시대의 성채가 있는 시돈에 도착했다. 시돈은 북쪽의 곶과 내륙으로 이어지는 낮은 암석지대로 둘러싸였으며 성읍 남쪽에는 큰 만(灣)이 있다. 이 도시 뒤쪽에는 비옥한 평야가 있고 오늘날에는 오렌지 밀감 재배가 성행하고 있.. 2010. 4. 27. [시리아] 하맛과 두라 유로포스 하맛(Hamath·삿 3:3)은 오늘날 시리아의 수도인 다마스쿠스(다메섹)에서 북쪽으로 214㎞ 지점에 있는 오론테스 강변의 나흐르 엘 아시(Nahr el Asi)이다. 에블라 문헌에서는 에마투(Ematu)로,시리아-히타이트 설형문자 비문에서는 아마투(Amtu)로 표기되고 셀루시드 왕조 때(BC175∼164년)에는 에피파네이아로 개칭되었는데 현재 지명은 하마(Hama)이다. 시리아의 북부 알렙포에서 출발하여 하맛까지는 146㎞지만 시리아에서 가장 잘 닦여진 4번과 5번 고속도로를 이용했기 때문에 중간에 있는 에블라 유적지에 들르고도 점심시간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성서시대에 하맛은 오랫동안 독립 왕국의 중심지였다. 이곳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데스바네아에서 가나안 지경을 정탐할 때 최북단의 정탐.. 2010. 4. 27. [시리아] 솔로몬이 사막에 건축한 다드몰 다드몰(타드모르·Tadmor)은 성경의 명칭으로 오론테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중간의 시리아 사막에 있는,종려나무가 무성한 오아시스에 솔로몬이 세운 도시이다(대하 8:4). 이 지역의 현재 아랍 명칭은 타드모르이고 신약시대에는 팔미라(Palmyra)로 불렸다. 왕상 9장 18절 히브리어 원문 병행 구절에는 다몰로 되어 있다. 다드몰과 다몰은 같은 의미이기 때문에 둘을 구별할 필요는 없다. 고대에는 다메섹(다마스쿠스)에서 하란으로 갈 경우 다드몰을 경유해야 했는데 이 길은 유프라테스 강까지 이른다. 다메섹에서 다드몰까지는 240㎞나 되는 장거리이기 때문에 나는 아침 일찍 다메섹을 출발했다. 얼마 되지 않아 사막지대가 끝없이 펼쳐졌다. 다른 사막과는 달리 시리아 사막은 모래가 아닌 검은 색을 띤 자갈이 깔린 .. 2010. 4. 27. [이라크] 앗수르의 두 도시 갈라(Calah·창 10:11)는 니므롯 또는 그의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건설한 아시리아(앗수르)의 고대 성읍이다(창 10:11). 수메르어로 ‘거룩한 문’이란 뜻의 갈라는 앗수르 북쪽의 티그리스 강변에 있는 오늘날 님루드(Nimrud)이다. 나는 바그다드에서 니느웨(니네베)로 가는 도중 사마라를 거쳐 니느웨 남쪽 35㎞ 지점에 있는 니므롯을 찾았다. 창세기 10장 12절에 갈라로 나오는 이곳은 BC 2500년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으며 BC 1250년쯤 앗수르의 살만에셀 1세에 의해 건설되었다. 그후 BC 884∼859년 아슈르나시르팔 2세에 의해 확장되었고 BC 879∼706년 앗수르의 수도가 다른 곳으로 이전될 때까지 행정수도가 되었다. BC 672년께에는 도시의 외벽과 관련해 이름을 남긴 사람이 .. 2010. 4. 21. [이라크] 아시리아제국의 수도 앗수르 앗수르(아수르·Asshur)는 메소포타미아 북부 지역에서 일어난 아시리아 제국의 첫번째 수도이다. 이곳은 현재 이라크의 모술(니느웨)에서 티그리스 강을 따라 남쪽으로 약 100㎞ 떨어진 칼라트 세르가트(Qalaat Shergat)라는 유적지이다. 오늘날 이라크 에 있는 성경의 도시들은 대부분 구약시대와 관련된 것들이다. 그중에서도 앗수르는 바벨론(바빌론) 다음으로 성경에서 자주 언급되고 있는 중요한 도시이기 때문에 앗수르에 대한 나의 기대 역시 컸다. 그곳에 가기 위해 바그다드에서 니느웨로 가는 1번 국도를 따라 올라가자 동쪽으로 계속 티그리스 강이 보였다. 1시간쯤 지나 중간에 사마라라는 곳에 들러 그레이트 모스크 알무타와킬 사원의 첨탑을 보기로 했다. 이른 아침이라서 회교 사원의 탑이 햇살과에 붉은 .. 2010. 4. 21. [이라크] 요나의 무덤이 있는 니느웨(모술) 니느웨(니네베·Nineveh)가 성경에 처음 소개된 것은 창세기이다. 노아홍수 이후 노아와 그 자손들이 세상에 흩어져 살 때 노아의 둘째아들인 함의 계통에서 니므롯이란 영걸이 출생한다. 그는 막강한 권력을 가졌기 때문에 여러 곳에 큰 도시를 건설했는데 그 당시 세운 도시 가운데 하나가 바로 니느웨이다(창 10:8∼12). 니느웨는 오늘날 이라크 북부 모술 지역이며 이라크 전쟁으로 일반인은 출입이 거의 불가능하다. 내가 이곳을 찾은 것은 2001년 8월이었으니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우리나라 자이툰 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곳이 바로 니느웨에서 동쪽으로 70㎞ 지점에 있는 아르빌(아르벨라)이다. 바그다드에서 출발한 나는 티그리스 강변의 1번 국도를 따라 북쪽으로 향했다. 400여㎞나 되는 긴 여정 속에 사.. 2010. 4. 21. [이라크] 아브라함의 고향 갈대아의 우르 성경에 언급되어 있는 갈대아(Chaldea, 창11:31)는 바사(페르시아) 나라 서편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하류 사이에 소재한 지역으로 고대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즉 오늘의 이라크와 이란의 남서부 지방이다. 메소포타미아는 헬라어로 ‘강 사이의 땅’이란 뜻이다. 아브라함의 고향인 우르(Ur)는 이 갈대아 지역에 있는 도시로 당시 크게 번성했다. 갈대아 지역의 북쪽은 산지와 구릉,사막지대가 계속되는데 남쪽은 저지대로 광대한 습지대이다. 산지의 강우량이 많아 저지대에는 농경이 성행하며,이 지방의 특산물로 종려가 많다. 동쪽과 북쪽의 산지는 오늘의 유전지대이다. 우르는 이라크의 수도인 바그다드에서 남쪽으로 350km 정도의 먼 거리에 있는데 내가 우르를 방문한 것은 가장 무더웠던 2001년.. 2010. 4. 21. [이라크] 느브갓네살 왕궁이 있는 바벨론 바벨론은 인류 최초의 문명이 발생한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있는 도시의 이름인 동시에 고대 바벨론 나라의 명칭이기도 하다. 도시 바벨론은 메소포타미아의 유프라테스강 유역의 시날 땅에 위치한 성읍이다. 이곳에 대해 성서는 니므롯이 에렉,악갓과 함께 세운 도시로 기록하고 있다(창 10:10). 지금은 이라크 전쟁으로 일반인은 이곳을 찾아갈 수 없지만 내가 이곳을 방문했던 2001년에는 방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라크에 대한 유엔의 금수조치와 비행이 금지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요르단 암만에서 육지를 통해 들어갔다. 요르단 암만에서 이라크 암만쪽 국경인 알카라마까지는 331㎞,국경에서 이라크 수도인 바그다드까지는 약 400㎞,바그다드에서 바벨론 유적지까지는 남쪽으로 80㎞ 정도의 거리에 있다. 고대 성서시대에는 오.. 2010. 4. 21. [몰타] 바울이 풍랑후 도착한 멜리데 로마로 압송되던 바울이 탔던 배가 유라굴로라는 풍랑을 만나 14일 동안 표류하다가 도착한 멜리데(Melth) 섬은 오늘날 몰타공화국이다. 이곳은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 섬 남쪽에 위치해 있다. 이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비행기로 가는 방법과 로마에서 기차로 시칠리아 섬까지 가서 그곳에서 배로 가는 방법,그리고 카이로에서 비행기로 가는 방법이 있다. 나는 로마의 일정을 마친 후 이곳으로 가기 위해 기차로 시라쿠사(성경에는 수라구사)까지 가서 배로 타기로 했다. 그러나 몰타로 가는 배는 이전에는 수라구사에서 4시간 정도 걸려 몰타로 갔으나 내가 방문했을 때는 수라구사에서 몰타로 가는 배는 없어지고 더 남쪽에 있는 포찰로(Pozzallo)에서 출항하고 있었다. 항해시간은 수라구사보다 짧아 2시간.. 2010. 4. 19. [그리스] 바울 3차 전도 기오섬 사모스 섬에서 기오(Chios) 섬으로 가는 배편 시간이 맞지 않아 뜻하지 않게 사모스 섬을 일주하며 많은 곳을 답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숙박할 곳을 구하지 못해 배에서 하룻밤을 새워야 하는 대가를 치렀다. 이튿날 사모스의 바티 항구에서 오전 7시에 떠난 배는 5시간의 오랜 항해 끝에 12시가 넘어서야 기오 섬에 도착했다. 기오 섬은 에게해의 동부 중앙지역에 자리잡고 있으며 터키 본토에서 직선거리로 8㎞밖에 안 떨어져 있지만 그 사이에는 작은 섬들이 산재해 있다. 기오 섬은 남북이 51.2㎞,동서가 12.8∼28.8㎞에 이른다. 이 섬의 가장 큰 항구는 섬 이름과 같은 기오 항으로 오늘날의 명칭은 시오(Chio) 또는 히오스(Hios)이다. 요세푸스의 기록에 따르면 고스 섬에서 레스보스(성경의 미둘레네.. 2010. 4. 19. [그리스] 바울이 복음의 씨를 뿌린 사모스섬 사모스(Samos) 섬에는 비행장이 있어 아테네에서 비행기로 바로 갈 수 있고 배를 이용할 경우에는 아테네에서 북쪽 바티항까지 18시간이 소요된다. 그리고 터키 에베소의 쿠사다시 항구에서는 하루 2회 운항하는 페리선을 이용하면 2시간 정도면 갈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밧모 섬 일주를 마친 후 스카라 항구에서 오전 10시에 사모스 섬으로 가는 배를 이용했다. 밧모 섬을 떠난 배는 2시간 정도 걸려 사모스 섬 남쪽 피타고리온 항구 도착했다. 배에서 내려 부두에서 바라본 피타고리온 항구는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남쪽에서 오는 배는 남쪽 항구인 피타고리온항에 정박하고 북쪽으로 가는 배는 북쪽 항구인 바티항에서 출발한다. 사모스 섬은 터키 트로길라온곶에서 1.6㎞ 지점에 있으며 에게해 동남부 이오니아 제.. 2010. 4. 19. [그리스] 바울의 3차 전도여행지 고스섬 로도의 낭만적인 소크라테스 거리에 있는 민박집에서 일박하고 고스 섬으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로도 항구로 갔다. 정기선은 출항 시간이 늦고 횟수도 적어 오전 8시에 출발하는 쾌속정을 타고 고스 섬으로 갔다. 사도행전 21장 1절에 언급되고 있는 고스 섬은 터키의 밀레도 항구에서 남쪽으로 68㎞ 거리에 있는 비옥한 작은 섬이다. 3만여명이 사는 작은 이 섬은 바울 사도가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는 도중 일박하고 이튿날 로도 섬으로 향한 곳이다(행 21:1). 로마 제국이 통치할 때는 자치도시였으며 클라우디우스 황제 때에는 주치의인 고안의 간언에 따라 모든 세금을 면제해주었다. 로마가 멸망한 뒤에는 오스만제국과 이탈리아의 지배를 받아오다가 1947년 그리스령이 되었다. 오늘날 섬 사람들은 .. 2010. 4. 19. 이전 1 ··· 31 32 33 34 35 36 37 ··· 4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