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36 [독일] 하이델베르크 [Heidelberg] 하이델베르그(Heidelberg)는 예로부터 예술과 교육의 도시로 알려져 있으며 이곳을 찾는 모든 이들을 매료시킬 만큼 시정이 넘치는 도시이다. 유유히 흐르는 네카강 건너편 언덕 중턱에 길게 누워있는 철학자의 길을 따라 거닐며 내려다 보이는 붉은 벽돌색 지붕의 대학가와 구 도시, 그 위에 떠 있는 듯한 고성의 모습 등, 모든 경치가 한 폭의 그림이 되어 버린다. 하이델베르그 고성은 독일의 대표적인 관광지로서 13세기부터 팔츠 선제후인 비테르스바하 가문의 역대 왕들이 건축한 성으로 고딕에서 르네상스 양식으로 개축하였는데, 17세기 오를레앙 계승전쟁시 프랑스의 루이14세 군에 의해 파괴되었다. 1386년 선제후 루프레히트1세가 세운,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인 하이델베르그 대학은 현재까지 7명의 노벨상 수.. 2018. 12. 2. [독일] 라이프치히 니콜라이 교회 [St. Nikolaikirche] 니콜라이 교회는 성 토마스 교회와 함께 라이프치히 기독교계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중요한 곳이다. 또한 1989년에 시작되어 1990년 10월 3일에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린 평화 혁명이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1165년에 처음 건축되었고, 15세기와 16세기를 지나면서 후기 고딕 양식으로 완성되었다. 1539년에 종교개혁자인 마틴 루터와 유스투스 요나스 1세가 이곳에서 설교를 함으로써 본격적인 종교개혁이 시작되었다. 그 후 1784년부터 니콜라이 교회가 작센주의 개신교 본부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교회 내에 있는 오르간은 1862년에 만들어졌는데, 19세기에 바흐의 오르간 곡들이 많이 연주되었다. 1980년대 초부터 공산주의 정권에 대항해 월요일마다 열렸던 월요데모(Montagsdemonstrationen).. 2018. 12. 2. [독일] 라이프치히 토마스교회 교회건물과 그 역사 1355년에는 성가대석이 로마네스크 양식에서 고딕양식으로 개조되었습니다. 성가대석의 북측에 있는 창, 탑의 아래층, 남북으로 넓힌 바형부 그리고 그 둥근 천정과 콘솔레(버팀대)는 1355년전에 된 것입니다. 15세기 말에 [에르쯔게비르게 (Erzgebirge)]산지에 은히 발견됨으로 라이프찌히는 부유한 경제도시가 됩니다. 이 결과로 라이프찌히 교회들은40년이내에 개축과 증축이 됩니다. 1482년에 토마스교회는 로마네스크양식의 중랑을 철거하고 새로운 후기 고딕 양식의 홀형 교회가 개축되어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1496년에 제막식이 이루어졋습니다. 그 후는 1702년의 탑이 완성되기 까지 토마스교회의 건물은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17세기에 된 예배당과 증축부와 장당의 북측 전체.. 2018. 12. 2. [독일] 아이제나흐 [Eisenach]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가 학창시절을 지낸 아이제나흐(Eisenach)는 독일의 수도 베를린(Berlin)에서 약 400여km 떨어진 작은 도시인데 자동차의 도시로도 알려져있고 독일 통일이후에는 오펠자동차의 생산공장이 가동되고 있다. 1067년부터 1170년까지 후기 로마네스크양식으로 지어진 바르트부르그성은 가장 독일다운 중세의 성인데 13세기 초반부터 많은 시인과 민네젱어라 불리는 민중예술인들이 초대되었다. 그 중 유명한 폰 포겔와이데와 볼프람 폰 에센바하등이 경쟁하던 모습은 벽에 그려진 탄호이저의 노래시합 장면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 성에는 루터스투베라는 매우 검소한 방이 있는데 1521년 5월부터 시작하여 10개월동안 마틴루터가 신약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해 낸 방이다. 마틴루터는 1498년부터 대학진학을.. 2018. 12. 2. [독일] 토르가우 - 세계 첫 개신교 교회 "루터를 이야기할 때 비텐베르크와 바르트부르크 성(城)은 대부분 알고 있지만, 보름스와 아이슬레벤을 아는 사람은 얼마 안 된다. 그리고 극소수 사람만 토르가우가 한때 종교개혁의 정치적 수도였다는 것을 알고 있다." 독일 동부 작센주 토르가우(Torgau) 관광 팸플릿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루터가 건축에 참여한 세계 최초의 개신교 교회가 있는 도시의 자부심이 느껴졌다. 지난달 24일 오후 토르가우 성을 찾았다. 비텐베르크, 아이제나흐, 아이슬레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관광객이 적었다. 게다가 교회도 금방 눈에 띄지 않았다. 동쪽으로 엘베강을 끼고 지어진 성은 밖에서 보면 요새, 안뜰에서 보면 아름다운 궁전이었다. 이 성이 완공된 것은 1544년. 루터의 정치적 후원자였던.. 2017. 8. 19. [독일] 에르푸르트 에르푸르트(Erfurt)도 1260여년의 긴 역사를 가진 아름다운 도시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이다. 처음으로 에르푸르트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742년 사도인 보니파티우스(Bonifatius)가 교황청의 명을 받고 선교여행을 하다가 이 곳의 빼어난 경관을 보고 교황청에 편지를 올리면서 부터이다. 그 당시 에르푸르트는 에르페스푸르트라 불리웠는데 보니파티우스사도가 이 곳을 주교구로 추천하였다. 이로부터 에르푸르트는 튀링겐지역의 종교적인 중심지가 되었으며 독일의 중심부에 위치하는 지역특성상 당시 독일지역의 교통로와 유럽상업로의 요충지로 발전하였고 현재는 튀링겐주의 수도로 통독 이후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에르푸르트는 면적면으로도 넓고, 중세적인 모습을 가장 잘 간직한 독일의 도시들 중 하나라는 .. 2014. 9. 16. [독일] 비텐베르그 비텐베르그(Lutherstadt Wittenberg)는 Sachen-Anhalt 주의 엘베(Elbe)강가 동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Unesco가 1996년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도시이다. 비텐베르그는 특히 마틴루터의 종교개혁운동의 진원지로 잘 알려져 있으며 이로 인해 16세기 유럽의 종교적, 문화적 요충지가 되었다. 마틴루터 이외에도 멜랑흐톤(Phillipp Melanchthon), 부겐하겐(Johannes Bugenhagen), 요나스(Justus Jonas), 독일 르네상스의 유명한 화가 크라나흐(Cranach)등이 활동하던 도시이기도 하다. 마틴루터의 집은 1504~1507에 원래 아우구스티너수도승들을 위해 지어졌는데 마틴루터가 1508년부터 이 곳에 살며 일했으며 부인 카타리나와 1525년에.. 2014. 9. 16. [독일] 꺼지지 않는 등불 ... 루터의 가르침과 개혁정신 교회의 사명이 무엇인지에 대해 논의할 때 예배 선교 봉사와 함께 중요하게 손꼽히는 것이 교회교육이다. 오늘날 교회의 교육적 사명은 누구나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교회 역사를 살펴보면 언제나 그랬던 것이 아니다.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교회교육의 새로운 장을 연 것은 마르틴 루터가 이룩한 또 하나의 공헌이었다. 1520년대말 루터는 그가 살던 작센주의 여러 교회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교회 순방을 하는 동안 루터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그것은 교회에 열심히 출석하는 사람들조차도 성경이나 기독교 신앙에 대해서 매우 무지하다는 것이었다. 십계명이나 사도신경을 모르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주기도문도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모든 크리스천이 성직자들과 동등하다는 ‘만인제사장’을 주장했던 루터.. 2014. 9. 16. [독일] 마르틴 루터의 출생과 성장 시대가 영웅을 만드는가,아니면 영웅이 새 시대를 만들어 나가는가? 끊임없이 회자되는 역사논쟁의 화두이다. 이 질문에 대하여 기독교 신앙은 둘 다 아니라고 대답한다. 기독교 신앙은 역사는 ‘인간의 역사’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역사’이며 인간이 역사의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이 역사의 주관자가 되신다고 고백한다. 스스로 역사의 주인이라고 착각하는 오만방자한 자들을 하나님은 심판하시고,시대에 따라 역사의 주역을 감당할 인물을 세우시고 그를 통해서 하나님은 새 역사를 이루어 나가신다고 믿는다. 성경에 등장하는 역사의 위대한 인물들 모세 다윗 바울 등은 모두 하나님께서 높이 들어 쓰신 역사의 주역들이었다. 16세기초 하나님은 또 한 사람의 역사의 주역을 부르셨다. 그리고 그를 통해서 2000년 교회 역사의 .. 2014. 9. 16. [독일] 아이슬레벤 & 만스펠트 아이슬레벤(Lutherstadt Eisleben)은 종교개혁자 마틴루터가 태어난 도시이며 또한 파란만장한 생애를 마감한 도시이기도 하다. 아이슬레벤은 중세기 유럽에서 가장 유명했던 광산 및 구리(Kupferschieferbergbau)공업도시 중 하나인데 구시가는 역사적인 건물들로 가득하다. 이들은 모두 도시민들의 도시사랑으로 재건한 것 들이다. 마틴루터의 생가는 현 루터거리에 있는데 이곳에서 마틴루터가 1483년 11월 10일 태어났다. 이 생가는 오랫동안 아이슬레벤 시민들이 보호하고 가꾸어 왔으나 1689년의 대 화재 후 파손, 다시 재건되었다. 길가 쪽 면은 바로크풍이다. 생가에서 조금 가다보면 마틴루터가 세례를 받은 성베드로-바울교회(St. Petri-Pauli Kirche)가 있으며 이 르네상스.. 2014. 9. 16. [독일] 가톨릭 교회를 향한 루터의 결별선언과 파문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개인의 운명도 달라질 수 있고 역사의 방향도 새롭게 전개될 수 있다. 1520년은 마르틴 루터에게는 위기의 시간이었다. 로마 교황은 그에게 교서를 보내서 60일 이내에 그의 주장을 철회하라고 명령했다. 교황청으로서는 당시 가톨릭 교회의 신부이며 수도사였던 루터에게 베푸는 마지막 ‘관용의 기회’였다. 이를 거부할 경우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파문뿐이었다. 파문은 그를 이단자로 낙인 찍어 교회 밖으로 추방하는 것으로 중세 가톨릭 교회는 이단자에게는 화형의 형벌도 불사했다. 이 위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루터로서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운명의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이었다. 그러나 루터는 의외로 담담했고 담대했다. 그는 진리가 승리할 것을 확신했고 ‘강한 성(城)’.. 2014. 7. 2. [독일] 마르틴 루터의 95개 조항 종교개혁주일을 앞두고 한국 신학계의 태두인 박준서 박사의 ‘종교개혁의 발자취를 따라’를 연재합니다. 내주부터 매주 화요일 35면에서 박 교수의 해박한 신학과 현장의 숨소리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1517년 늦가을. 독일 엘베 강가의 조용한 대학도시 비텐베르크의 아침은 여느 날과 다름없이 시작되었다. 우유배달 마차의 덜컹거리는 소리가 이른 아침의 정적을 깨뜨리는 사이 검고 긴 사제복을 입은 한 젊은이가 어디론가 분주히 발길을 옮기고 있었다. 단단한 체구의 젊은이의 손에는 둘둘 말린 큰 종이뭉치가 쥐어져 있었고 그의 얼굴에는 투지와 긴장감이 배어났다. 젊은이가 도착한 곳은 비텐베르크대학에서 교회로 사용하고 있는 대학교회의 정문이었다. 원래 이 교회는 그 도시를 둘러싸고 있던 성채에 부속된 ‘성채교회’(Ca.. 2014. 7. 2.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