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1171 [이탈리아] 로마와 서바나 바울은 로마에 복음 전파를 간절히 원했고 하나님은 그런 바울을 죄인의 몸으로 로마로 입성케 했다. 그리고 더욱 간절히 가기 원했던 서바나는 결국 가지 못한 채 로마의 아피아 가도에서 목이 잘려 순교했다. 로마는 나라 이름은 물론 수도 이름도 된다. 도시로서의 로마는 현재 이탈리아의 수도이며 옛 이베리아 반도의 중앙에 있던 로마 제국의 수도이다. 제국으로의 로마는 예수님 당시에 동으로는 유프라테스 강,서로는 라인 강,남으로는 지중해,북으로는 동부 유럽에 미치는 광대한 영토를 소유하였다. 전성기에는 유럽 대륙을 대부분 석권하였으며 아프리카와 아시아까지 세력을 확장한 때도 있었다. BC 735년에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란 쌍둥이의 한 사람인 로물루스가 건국하였다는 전설로 출발한 고대 로마는 세계를 지배했다. .. 2010. 4. 28. [터키] 결심의 항구 드로아 앗소 앗소(Assos)는 오늘날 터키 서쪽 안드라미티움 (Andramyttium)만에 있는 드로아 남쪽의 항구도시다. 이스탄불에서 이곳에 가려면 자동차로 이틀을 달려가야 한다. 나는 모처럼 아들과 함께 9인승 밴을 이용해 드로아와 앗소를 찾아보기로 했다. 이스탄불은 수도는 아니지만 터키에서 가장 큰 도시. 이스탄불은 보스포러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유럽과 아시아 두 대륙으로 나누어져 있다. 유럽쪽의 이스탄불에서 출발한 차는 마르마라(Marmara) 해협을 끼고 서남쪽으로 달렸다. 왼쪽으로 펼쳐지는 해협을 보며 3시간30분 동안 280㎞를 달려가자 터키 본토로 넘어가는 마르마라 해협의 맨 끝에 도착했다. 에세아바트(Eceabat)에서 자동차를 배에 싣고 본토에 도착한 후 다시 남쪽으로 75㎞를 달려 앗소에.. 2010. 4. 28. [터키] 바울의 로마 행 - 무라 바다라 니도 전날 버가를 답사한 후 앗달리아에서 하루를 묵은 후 해안가에 있는 바울의 전도 여행지인 무라(Myra)와 바다라(Patara)를 향해 차를 몰았다. 무라는 앗달리아에서 120㎞ 정도 떨어져 있지만 해안가를 따라 뻗어있는 길은 굴곡이 심한데다 초행길이라 빨리 달릴 수 없었다. 더구나 북쪽으로 펼쳐진 고산지대와 어우러진 바닷가의 풍경이 매우 아름다워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게 했다. 결국 3시간이 걸려서 무라에 도착했다. 무라는 소아시아 남루기아도에 있는 지중해의 항구도시이다. 루기아 도시연맹의 6대 도시 중 하나로 본성은 바다로부터 4㎞ 가량 떨어진 안드라쿠스 강변에 위치했었다. 지명의 뜻은 몰약,불사르다이다. 무라에 들어서자마자 바위를 깎아 만든 무덤들이 이곳의 특징을 한눈에 보여주었다. 고대 중동지역에.. 2010. 4. 28. [요르단] 요르단 오지의 성읍들 오늘날 요르단 지역에 있는 성경의 도시들은 이스라엘 다음으로 많다. 성경에 언급된 도시는 대체로 480곳 이상으로 이스라엘에 절반이 넘는 264여 곳이 있으며 다음으로 요르단에 67여곳이 있어 두번째로 많다. 그리고 이집트 35여곳,그리스 시리아 레바논과 기타 지역 순으로 소재해 있다. 지금까지 ‘성서속 도시 이야기’를 통해 현대 국가별로 비교적 생소한 도시들을 소개했다. 이번에는 본인이 답사한,요르단 지역의 생소한 도시들을 사진 중심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도피성 중의 하나인 길르앗 라못 이곳은 다메섹 남쪽 약 112㎞ 지점,오늘날 이르비드 동쪽 약 24㎞쯤 되는 곳에 있다. 라못 길르앗으로 부르기도 하는 이곳은 요단강 동쪽에 있던 베셀,바산 골란과 함께 도피성(逃避城) 중 하나이다(신 4:43,수20.. 2010. 4. 28. [이집트] 돕가 및 르비딤 애굽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민족의 시내산까지의 여정은 대부분 고대 광산길이었다. 이 광산 중 하나가 오늘날 세라비트 엘 하팀(Serabit el Hatim·Serabit E Khadim)이라 불리는 성경의 돕가(Dophkah)이다. 엄밀히 말하면 이스라엘 민족이 걸어간 길은 돕가 광산 아래의 와디였다. 돕가에 가기 위해서는 시내산에서 서북쪽 지역으로 와디를 따라 가야 하기 때문에 나는 시내산에서 현지 안내인을 찾았다. 다행히 돕가에 가는 길을 잘 아는 형제를 만나 안내를 받았다. 일정을 마친 후 생각해보니 이들을 만난 것은 하나님의 큰 은혜였다. 나는 일행과 이들 형제의 지프를 대여했다. 원래 사막길은 고장에 대비해 차량 2대를 빌려야 했지만 우리는 경비를 절감하기 위해 1대로 가기로 했다. 엘림을 떠난.. 2010. 4. 28. [이집트] 출애굽 여정지 마라 - 엘림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기적으로 건넜다는 홍해(오늘날 이스마일리아 앞 빅터 호숫가)에서 역사적인 하룻밤을 보낸 나는 수에즈 운하 밑으로 건설된 지하 터널을 통해 홍해를 건넜다. 당시 이집트에서 가나안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지중해안을 따라가는 블레셋 길이었으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훈련시키기 위해 홍해 광야길로 인도하셨다(출 13:17).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은 에담(수르) 광야길을 통해 사흘동안 행군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마라에 도착해서도 물이 써서 마시지 못했다(출 15:22∼25). 그러나 나는 자동차로 40여분만에 도착했다. 마라(Marah)는 홍해(수에즈 해저 터널)에서 30㎞ 지점에 소재하는데 오늘날 성경학자들은 옛날의 마라 지역이 오늘의 아윤 무사(Ayun Musa)라고 추측하고 있다... 2010. 4. 28. [이집트] 출애굽 당시의 도시 비돔과 숙곳 출애굽의 출발지인 라암셋에서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은 후 곡식창고가 있었던 비돔을 향했다. 비돔(Pithom)은 애굽 동북부 나일강에서 팀사(Timsah) 호수에 이르는 골짜기 사이에 있는 성읍으로 ‘아톰의 집’이라는 뜻이다. 현재 두 곳이 비돔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 곳은 나일강 삼각주 동쪽에 있는 와디 투메일라트(wadi Tumeilat)에 있는 텔 엘 라타바(Tell el Ratabah)와 다른 한곳은 텔 엘 마스쿠타(Tell el Maskhutah)이다. 1929년 발견된 자료에 따르면 텔 엘 마스쿠타가 더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럴 경우 숙곳은 라타바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숙곳을 비돔과 동일시하는 견해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스쿠타는 1883년 에두아르드 나빌레(Edouard .. 2010. 4. 28. [이집트] 성경서도 생소한 성지 세곳 - 비베셋, 온, 놉 일반적으로 이집트 지역의 성지를 순례하게 되면 카이로 시내에 있는,예수 피난교회와 그 옆에 있는 모세 기념회당,그리고 이집트 고고학박물관,피리미드와 스핑크스를 관광한 후 시내산으로 향한다. 그러나 이집트로 피난 온 예수께서 여러 곳에 피신한 것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나는 그 중 한 곳인 성서의 온(On) 지역을 찾아가기 위해 택시를 잡았다. 온은 오늘날 이집트 수도인 카이로에서 동북쪽으로 11㎞쯤 떨어진 마타리예(Matariyeh) 근처에 있는 텔 후슨(Tell Husn)으로 여겨진다. 헬라어로는 온을 헬리오폴리스라고 하여 출애굽기 1장 11절에 라암셋 다음에 ‘온,곧 헬리오폴리스’라고 기록,동일시하고 있다. 실제로 오늘날 온은 확장된 헬리오폴리스내에 있다. 카이로 외곽 지역의 한 구석에 있어.. 2010. 4. 28. [이집트] 출애굽 출발지 라암셋 라암셋(Rameses)은 애굽의 나일강 하류 델타 동북부에 있던 삼각주의 중앙 부분에 있는 성읍으로 나일강의 타니데익 지류 동쪽에 있는 국고성이며 요새 성읍이다. 이름은 ‘레’(Re·태양신)는 ‘그를 낳았다’란 뜻이다. 바로는 요셉과 그 친족(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애굽에서 가장 비옥하고 살기 좋은 땅인 고센 지역을 정주지로 허락하였는데 라암셋은 고센 지역 중 고정된 한 구역이다(창 47:6,11). 라암셋이 성경에서 유명한 것은 야곱 이후 400년 동안 그 후손들이 거주하면서 이스라엘이라는 큰 민족을 이룬 후 모세의 인도로 애굽을 탈출할 때 출발지였기 때문이다. 라암셋은 이집트의 수도인 카이로에서 북쪽으로 약 250km 떨어진 곳에 있다. 이집트는 다른 국가와 달리 렌터카를 이용하는 것은 매우 위험.. 2010. 4. 27. [레바논] 페니키아 지역의 시돈과 사르밧 시돈(Sidon)은 두로 북쪽 약 40㎞ 지점. 오늘날 레바논의 수도인 베이루트 남방 약48㎞ 지점의 지중해안에 있는 항구도시다. 지금은 사이다(Saida)라고 부르는 이곳을 찾아가기 위해 베이루트를 떠난 차는 지중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달렸다. 오른쪽으로 펼쳐지는 지중해안은 그 옛날 조선술과 무역으로 유명했던 페니키아(베니게)인들을 상기시켰다. 이들은 땅끝이라 불리는 스페인과 포르투갈 지역까지 무역을 확장시켰다. 차는 출발한지 1시간도 채 못돼 성경에는 수로보니게 지역으로 알려진,십자군 시대의 성채가 있는 시돈에 도착했다. 시돈은 북쪽의 곶과 내륙으로 이어지는 낮은 암석지대로 둘러싸였으며 성읍 남쪽에는 큰 만(灣)이 있다. 이 도시 뒤쪽에는 비옥한 평야가 있고 오늘날에는 오렌지 밀감 재배가 성행하고 있.. 2010. 4. 27. [시리아] 하맛과 두라 유로포스 하맛(Hamath·삿 3:3)은 오늘날 시리아의 수도인 다마스쿠스(다메섹)에서 북쪽으로 214㎞ 지점에 있는 오론테스 강변의 나흐르 엘 아시(Nahr el Asi)이다. 에블라 문헌에서는 에마투(Ematu)로,시리아-히타이트 설형문자 비문에서는 아마투(Amtu)로 표기되고 셀루시드 왕조 때(BC175∼164년)에는 에피파네이아로 개칭되었는데 현재 지명은 하마(Hama)이다. 시리아의 북부 알렙포에서 출발하여 하맛까지는 146㎞지만 시리아에서 가장 잘 닦여진 4번과 5번 고속도로를 이용했기 때문에 중간에 있는 에블라 유적지에 들르고도 점심시간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성서시대에 하맛은 오랫동안 독립 왕국의 중심지였다. 이곳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데스바네아에서 가나안 지경을 정탐할 때 최북단의 정탐.. 2010. 4. 27. [시리아] 솔로몬이 사막에 건축한 다드몰 다드몰(타드모르·Tadmor)은 성경의 명칭으로 오론테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중간의 시리아 사막에 있는,종려나무가 무성한 오아시스에 솔로몬이 세운 도시이다(대하 8:4). 이 지역의 현재 아랍 명칭은 타드모르이고 신약시대에는 팔미라(Palmyra)로 불렸다. 왕상 9장 18절 히브리어 원문 병행 구절에는 다몰로 되어 있다. 다드몰과 다몰은 같은 의미이기 때문에 둘을 구별할 필요는 없다. 고대에는 다메섹(다마스쿠스)에서 하란으로 갈 경우 다드몰을 경유해야 했는데 이 길은 유프라테스 강까지 이른다. 다메섹에서 다드몰까지는 240㎞나 되는 장거리이기 때문에 나는 아침 일찍 다메섹을 출발했다. 얼마 되지 않아 사막지대가 끝없이 펼쳐졌다. 다른 사막과는 달리 시리아 사막은 모래가 아닌 검은 색을 띤 자갈이 깔린 .. 2010. 4. 27. [이라크] 앗수르의 두 도시 갈라(Calah·창 10:11)는 니므롯 또는 그의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건설한 아시리아(앗수르)의 고대 성읍이다(창 10:11). 수메르어로 ‘거룩한 문’이란 뜻의 갈라는 앗수르 북쪽의 티그리스 강변에 있는 오늘날 님루드(Nimrud)이다. 나는 바그다드에서 니느웨(니네베)로 가는 도중 사마라를 거쳐 니느웨 남쪽 35㎞ 지점에 있는 니므롯을 찾았다. 창세기 10장 12절에 갈라로 나오는 이곳은 BC 2500년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으며 BC 1250년쯤 앗수르의 살만에셀 1세에 의해 건설되었다. 그후 BC 884∼859년 아슈르나시르팔 2세에 의해 확장되었고 BC 879∼706년 앗수르의 수도가 다른 곳으로 이전될 때까지 행정수도가 되었다. BC 672년께에는 도시의 외벽과 관련해 이름을 남긴 사람이 .. 2010. 4. 21. [이라크] 아시리아제국의 수도 앗수르 앗수르(아수르·Asshur)는 메소포타미아 북부 지역에서 일어난 아시리아 제국의 첫번째 수도이다. 이곳은 현재 이라크의 모술(니느웨)에서 티그리스 강을 따라 남쪽으로 약 100㎞ 떨어진 칼라트 세르가트(Qalaat Shergat)라는 유적지이다. 오늘날 이라크 에 있는 성경의 도시들은 대부분 구약시대와 관련된 것들이다. 그중에서도 앗수르는 바벨론(바빌론) 다음으로 성경에서 자주 언급되고 있는 중요한 도시이기 때문에 앗수르에 대한 나의 기대 역시 컸다. 그곳에 가기 위해 바그다드에서 니느웨로 가는 1번 국도를 따라 올라가자 동쪽으로 계속 티그리스 강이 보였다. 1시간쯤 지나 중간에 사마라라는 곳에 들러 그레이트 모스크 알무타와킬 사원의 첨탑을 보기로 했다. 이른 아침이라서 회교 사원의 탑이 햇살과에 붉은 .. 2010. 4. 21. [이라크] 요나의 무덤이 있는 니느웨(모술) 니느웨(니네베·Nineveh)가 성경에 처음 소개된 것은 창세기이다. 노아홍수 이후 노아와 그 자손들이 세상에 흩어져 살 때 노아의 둘째아들인 함의 계통에서 니므롯이란 영걸이 출생한다. 그는 막강한 권력을 가졌기 때문에 여러 곳에 큰 도시를 건설했는데 그 당시 세운 도시 가운데 하나가 바로 니느웨이다(창 10:8∼12). 니느웨는 오늘날 이라크 북부 모술 지역이며 이라크 전쟁으로 일반인은 출입이 거의 불가능하다. 내가 이곳을 찾은 것은 2001년 8월이었으니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우리나라 자이툰 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곳이 바로 니느웨에서 동쪽으로 70㎞ 지점에 있는 아르빌(아르벨라)이다. 바그다드에서 출발한 나는 티그리스 강변의 1번 국도를 따라 북쪽으로 향했다. 400여㎞나 되는 긴 여정 속에 사.. 2010. 4. 21. [이라크] 아브라함의 고향 갈대아의 우르 성경에 언급되어 있는 갈대아(Chaldea, 창11:31)는 바사(페르시아) 나라 서편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하류 사이에 소재한 지역으로 고대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즉 오늘의 이라크와 이란의 남서부 지방이다. 메소포타미아는 헬라어로 ‘강 사이의 땅’이란 뜻이다. 아브라함의 고향인 우르(Ur)는 이 갈대아 지역에 있는 도시로 당시 크게 번성했다. 갈대아 지역의 북쪽은 산지와 구릉,사막지대가 계속되는데 남쪽은 저지대로 광대한 습지대이다. 산지의 강우량이 많아 저지대에는 농경이 성행하며,이 지방의 특산물로 종려가 많다. 동쪽과 북쪽의 산지는 오늘의 유전지대이다. 우르는 이라크의 수도인 바그다드에서 남쪽으로 350km 정도의 먼 거리에 있는데 내가 우르를 방문한 것은 가장 무더웠던 2001년.. 2010. 4. 21. [이라크] 느브갓네살 왕궁이 있는 바벨론 바벨론은 인류 최초의 문명이 발생한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있는 도시의 이름인 동시에 고대 바벨론 나라의 명칭이기도 하다. 도시 바벨론은 메소포타미아의 유프라테스강 유역의 시날 땅에 위치한 성읍이다. 이곳에 대해 성서는 니므롯이 에렉,악갓과 함께 세운 도시로 기록하고 있다(창 10:10). 지금은 이라크 전쟁으로 일반인은 이곳을 찾아갈 수 없지만 내가 이곳을 방문했던 2001년에는 방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라크에 대한 유엔의 금수조치와 비행이 금지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요르단 암만에서 육지를 통해 들어갔다. 요르단 암만에서 이라크 암만쪽 국경인 알카라마까지는 331㎞,국경에서 이라크 수도인 바그다드까지는 약 400㎞,바그다드에서 바벨론 유적지까지는 남쪽으로 80㎞ 정도의 거리에 있다. 고대 성서시대에는 오.. 2010. 4. 21. [몰타] 바울이 풍랑후 도착한 멜리데 로마로 압송되던 바울이 탔던 배가 유라굴로라는 풍랑을 만나 14일 동안 표류하다가 도착한 멜리데(Melth) 섬은 오늘날 몰타공화국이다. 이곳은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 섬 남쪽에 위치해 있다. 이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비행기로 가는 방법과 로마에서 기차로 시칠리아 섬까지 가서 그곳에서 배로 가는 방법,그리고 카이로에서 비행기로 가는 방법이 있다. 나는 로마의 일정을 마친 후 이곳으로 가기 위해 기차로 시라쿠사(성경에는 수라구사)까지 가서 배로 타기로 했다. 그러나 몰타로 가는 배는 이전에는 수라구사에서 4시간 정도 걸려 몰타로 갔으나 내가 방문했을 때는 수라구사에서 몰타로 가는 배는 없어지고 더 남쪽에 있는 포찰로(Pozzallo)에서 출항하고 있었다. 항해시간은 수라구사보다 짧아 2시간.. 2010. 4. 19. [그리스] 바울 3차 전도 기오섬 사모스 섬에서 기오(Chios) 섬으로 가는 배편 시간이 맞지 않아 뜻하지 않게 사모스 섬을 일주하며 많은 곳을 답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숙박할 곳을 구하지 못해 배에서 하룻밤을 새워야 하는 대가를 치렀다. 이튿날 사모스의 바티 항구에서 오전 7시에 떠난 배는 5시간의 오랜 항해 끝에 12시가 넘어서야 기오 섬에 도착했다. 기오 섬은 에게해의 동부 중앙지역에 자리잡고 있으며 터키 본토에서 직선거리로 8㎞밖에 안 떨어져 있지만 그 사이에는 작은 섬들이 산재해 있다. 기오 섬은 남북이 51.2㎞,동서가 12.8∼28.8㎞에 이른다. 이 섬의 가장 큰 항구는 섬 이름과 같은 기오 항으로 오늘날의 명칭은 시오(Chio) 또는 히오스(Hios)이다. 요세푸스의 기록에 따르면 고스 섬에서 레스보스(성경의 미둘레네.. 2010. 4. 19. [그리스] 바울이 복음의 씨를 뿌린 사모스섬 사모스(Samos) 섬에는 비행장이 있어 아테네에서 비행기로 바로 갈 수 있고 배를 이용할 경우에는 아테네에서 북쪽 바티항까지 18시간이 소요된다. 그리고 터키 에베소의 쿠사다시 항구에서는 하루 2회 운항하는 페리선을 이용하면 2시간 정도면 갈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밧모 섬 일주를 마친 후 스카라 항구에서 오전 10시에 사모스 섬으로 가는 배를 이용했다. 밧모 섬을 떠난 배는 2시간 정도 걸려 사모스 섬 남쪽 피타고리온 항구 도착했다. 배에서 내려 부두에서 바라본 피타고리온 항구는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남쪽에서 오는 배는 남쪽 항구인 피타고리온항에 정박하고 북쪽으로 가는 배는 북쪽 항구인 바티항에서 출발한다. 사모스 섬은 터키 트로길라온곶에서 1.6㎞ 지점에 있으며 에게해 동남부 이오니아 제.. 2010. 4. 19. [그리스] 바울의 3차 전도여행지 고스섬 로도의 낭만적인 소크라테스 거리에 있는 민박집에서 일박하고 고스 섬으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로도 항구로 갔다. 정기선은 출항 시간이 늦고 횟수도 적어 오전 8시에 출발하는 쾌속정을 타고 고스 섬으로 갔다. 사도행전 21장 1절에 언급되고 있는 고스 섬은 터키의 밀레도 항구에서 남쪽으로 68㎞ 거리에 있는 비옥한 작은 섬이다. 3만여명이 사는 작은 이 섬은 바울 사도가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는 도중 일박하고 이튿날 로도 섬으로 향한 곳이다(행 21:1). 로마 제국이 통치할 때는 자치도시였으며 클라우디우스 황제 때에는 주치의인 고안의 간언에 따라 모든 세금을 면제해주었다. 로마가 멸망한 뒤에는 오스만제국과 이탈리아의 지배를 받아오다가 1947년 그리스령이 되었다. 오늘날 섬 사람들은 .. 2010. 4. 19. [그리스] 고스를 떠난 바울이 도착한 로도섬 남키프로스 라나카에서 바울이 3차 전도여행 때 들른 로도 섬으로 가기 위해 아테네행 비행기에 올랐다. 오전 5시40분에 이륙한 비행기는 7시30분쯤 아테네에 도착했고 공항에서 5시간30분을 기다린 후 다시 오후 1시에 로도 섬으로 떠나는 비행기에 올랐다. 아테네를 이륙한 비행기는 예정시간보다 30분 늦은 오후 2시30분 로도 섬에 도착했다. 로도(Rhodes) 섬은 고스 섬 남쪽으로 85㎞쯤,터키 소아시아의 해협으로부터는 약 17㎞ 떨어져 있는 지중해의 작은 섬이다. 에게해 대부분의 섬과 마찬가지로 로도 섬도 터키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으나 그리스에 속해 있다. ‘로도’는 섬 이름인 동시에 항구 이름이기도 하며 그 이름의 뜻은 ‘장미꽃’이다. 섬의 크기는 에게해에서 그레데 다음으로 크며 너비 67.2㎞,길.. 2010. 4. 19. [키프로스] 바울이 매를 맞은 바보(Paphos) 북키프로스의 서쪽에 있는 바보는 바울이 바나바와 함께 1차 전도여행 중 살라미를 떠나 도착한 항구도시이다. 오늘날 파포스(Paphos)로 불리는 이곳을 바울과 바나바는 터키의 실루기아에서 배를 타고 살라미로 온 것과는 달리 섬 중앙을 통해 육지로 이곳에 왔다(행 13:4∼6). 나 역시 라나카에서 빌린 차로 이곳을 찾았다. 동행한 목사님은 갈수록 오른쪽 운전에 익숙해져 잘 닦여진 고속도로를 따라 속도를 내어 달렸다. 고속도로가 생기기 전에는 해안가의 험한 길로 가야했기 때문에 시간이 배는 더 걸렸을 것을 고속도로 덕택에 라나카에서 바보까지 130㎞ 2시간30분만에 갈 수 있었다. 아마 운전석이 우리나라처럼 왼쪽에 있었다면 더 시간이 단축되었을 것이다. 바보는 한때 구브로섬의 수도였던 성읍으로 이 섬의 남.. 2010. 4. 19. [키프로스] 바울의 1차 전도여행지 살라미 바울이 바나바와 함께 첫번째 전도여행에서 들렀던 구브로 섬(행 13:4∼4)의 답사를 위해 그레데섬의 이라클리온 공항으로 향했다. 구약성경(겔 27:6∼7)에 엘리사 섬과 깃딤 섬의 다른 이름으로도 나오는 구브로 섬은 오늘날 키프로스다. 성경시대에 이곳은 직물과 황양목(도장나무),상아로 유명했다. 그레데에서 지중해 맨 동쪽에 있는 키프로스로 가려면 배를 타고 갈 수도 있으나 하루를 잡아야 가능했기 때문에 비행기를 이용하기로 하고 그레데에서 아테네발 오전 11시 비행기에 올랐다. 지중해를 내려다보며 아테네에 도착한 후 곧바로 남키프로스로 가는 오후 1시행 비행기로 갈아탔다. 아테네를 이륙한 비행기는 1시간20분만에 라나카 공항에 도착했다. 오늘날 키프로스(구브로 섬)는 남과 북으로 갈라져 있다. 남키프로스.. 2010. 4. 19. [그리스] 그레데섬과 남쪽 작은 마을 라새아 미항을 출발한 나는 “미항이 라새아성에서 가깝더라”(행 27:8)는 성경 구절에 따라 오늘날 라사이아로 표시된 지도를 따라 차를 몰았다. 라새아(Lasea)는 그레데 섬 남쪽 해안에 있는 항구도시로 라사이아 알라사 달라사 등으로 간단히 소개된,잘 알려진 곳이 아니었고 지리학자들도 별로 언급이 없는 곳이다. 답사를 위해 가지고 간 자료에 의하면 호메로스 시대에는 이 섬지역에 90개의 도시들이 존재했다고 한다. 그리고 1850년 지중해 일대를 조사한 스프레트 선장은 페어레이븐스 근처 해안에서 고대 유적들을 발견했는데 그것들이 라새아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런 기록에 따르면 아마 라새아는 조그마한 해안 성읍에 불과했을 것이다. 라새아로 가는 길은 비포장도로여서 흙먼지가 날렸다. 그런 길을 5㎞쯤.. 2010. 4. 19. [그리스] 바울이 겨울나기를 권했던 미항 로마로 압송돼 가던 바울이 무라에서 갈아탄 알렉산드리아호는 풍랑으로 인해 그레데 섬 동쪽 살모네 앞을 지나 남쪽 해안을 따라가다가 간신히 라새아 성에서 가까운 미항에 도착했다. 바울은 금식하는 절기가 지나 행선하기가 위태함을 알고 이곳에서 겨울을 보낸 후 이달리야(이탈리아)로 가기를 백부장에게 권했다(행 27:6∼11). 나는 이런 배경을 가진 미항을 찾아가기 위해 가우다 섬을 방문한 후 그레데 남쪽에 있는 스파키온 항구에서 북쪽의 이라클리온으로 다시 돌아왔다. 미항은 스파키온 항구 동쪽에 위치해 있으나 해안 지형이 험하여 배편은 위험했다. 그래서 이라클리온에서 가우다로 갈 때와는 달리 렌터카로 동행 3명과 남쪽으로 떠났다. 미항으로 가는 길 중간 지점에는 바울의 편지를 대서해준 디도가 묻혔던 고르티스를.. 2010. 4. 19. [그리스] 바울이 풍랑을 만난 가우다섬 그레데 섬을 답사하기 위해 그리스의 데살로니가에서 예정보다 앞당겨 그레데행 비행기에 올랐다. 일정을 앞당긴 것은 그레데 섬의 남쪽에 있는 그리스 최남단 가우다(Gavda) 섬을 가기 위해서였다. 가우다 섬은 로마로 압송되어 가던 바울이 탄 배가 유라굴라라는 광풍을 만났을 때 간신히 피난했던 곳이다(행 27:14∼16). 나는 성경에 한번 나오는 이 섬이 실제로 지도상에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레데에 도착해 구입한 상세한 지도에 ‘가브도스’(Gavdos)라는 이름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순간 흥분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나는 흥분과 기대감에 부풀어 택시에 몸을 싣고 가우다섬으로 출발하는 배가 있는 그레데 남쪽의 작은 항구 스파키온으로 향했다. 그레데는 동서로 길게 늘어선 섬으로 중앙에는 아주 높은 산.. 2010. 4. 19. [그리스] 바울의 2차 전도 경유지 사모드라게섬 (1)바울이 2차 전도여행 때 지나간 사모드라게 섬 성경에는 496곳의 도시와 성읍과 섬들이 나온다. 이스라엘에 273곳,요르단에 73곳,이집트에 34곳,터키에는 29곳,그리스와 지중해에 섬을 포함해 25곳,시리아에 20곳,레바논에는 16곳,이란과 이라크에 15곳,이탈리아에 4곳,기타 지역에 7곳 등이다. 그중에서 위치를 확인을 할 수 있는 곳이 450곳이며 그중 현재 답사 가능한 곳은 300곳이다. 사모드라게 섬은 바울이 2차 전도여행 중에 들렀던 곳으로 성경에서 꼭 한번 언급된 곳이다(행 16:11). 이곳을 방문하기 위해 터키 이스탄불에서 그리스로 가는 국제열차에 몸을 실었다. 이 열차는 오전 8시30분 이스탄불을 출발하여 그리스 국경까지 가는 2층 침대의 국제열차였으나 시설이 낙후되어 우리나라 비.. 2010. 4. 19. 제주시 아라동 성안교회 제주선교 (성안교회, 이기풍 목사 선교 기념비) 이기풍 목사는 1895년 12월 23일 평양성 동대문 밖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머리가 명석하여 6세 때에 사서오경을 줄줄 외울 정도였으며, 12세 때에는 백일장에서 붓글씨 부분의 장원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암울했던 그 시대는 그로 하여금 학문보다는 곁 길로 빠지게 했으며, 평양 시내의 어깨 두목으로 마포삼열 (Samel A Moffett)목사에게 돌을 던져 턱을 깨트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마포 삼열의 따뜻한 온정과 청일전쟁 동안에 원산지방으로 피신하였다가 소안련(W. L. Sw-allen)선교사의 전도로 예수를 믿게 되었다. 1901년은 그에게 큰 영광의 한 해였다. 장로 장립, 평양신학교에 입학 그리고 10세 연하의 윤함애씨의 결혼이었다. 19.. 2010. 4. 13. 전남 여수 손양원목사 유적지 순교기념관 손양원목사 순교 기념관 여수 기독교성지 (애양원, 손양원목사 순교기념관 등)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사랑과 자비의 마음으로 세워진 애양원은 1939년 손양원 목사가 부임하여 목회를 시작했으며 애양원 병원 원장을 겸임하면서 사역했던 곳이다. 1939년 일제에 항거한 순천노회의 "원탁회 사건"으로 손양원 목사이외 수많은 교민들이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1950년 6.25 동란때는 끝까지 신앙을 지키다 순교한 두아들을 죽인 공산당원을 용서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를 양아들로 삼아 예수님의 사랑을 몸소 실천하였고 그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품안에 돌아오게 하였다. 하지만 손양원 목사님도 끝내는 애양원 환자들과 함께 공산당에게 순교당했다. 현재 애양원 기독 성지 안에는 한센병 환자들의 의료, 직업,.. 2010. 4. 13. 이전 1 ··· 30 31 32 33 34 35 36 ··· 4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