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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신행전’ 바닷길서 밀알을 찾다… 신안 증도로 떠나는 성지순례 모세의 기적처럼 순식간에 바닷물이 물러난다. 증도와 화도를 갈라놓았던 바다가 사라지자 무명천을 풀어놓은 듯 노두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하얀 고무신을 신은 문준경 전도사가 한 손에는 성경책을, 한 손에는 의약품과 사탕이 든 보따리를 들고 건너던 복음의 바닷길이다. 그녀가 순교한 지 어언 60년째. 시계바늘조차 천천히 도는 슬로시티 증도가 ‘천국의 섬’으로 거듭나고 있다. 전남 신안 앞바다의 섬 증도를 ‘보물섬’이라 부른다. 증도의 서쪽 끝에 위치한 검산마을 앞바다에서 14세기 중국 원나라 시대의 도자기 2만여 점과 동전 28t등 모두 2만3000여 점의 유물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증도의 보물은 600년 만에 햇빛을 본 해저유물 뿐만이 아니다. 사옥도의 지신개선착장에서 철부선을 타고 증도 버지.. 2011. 1. 21.
전북 정읍시 소성면 두암교회 정읍 두암교회 두암교회 윤임례 집사를 비롯해 23명이 순교한 이곳은 일제시대에 복음이 전해졌다고 한다. 해방이 되면서 교인들은 교회에 가기 위해 멀리 걸어 다녀야 했던 두암 마을에 교회를 세우게 된다. 선교사의 지원을 받아 김용은 전도사가 윤임례 집사 가정을 중심으로 단촐한 기와집에서 성도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며 교회를 시작하게 되었다. 교회가 창립된 지 얼마 안 되어 임동선 전도사를 초청해 부흥집회를 가졌는데 평양에서 공산주의를 접했던 임전도사는 공산주의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으며 이 날 집회도 비판적인 내용을 말하였다. 6.25전쟁이 일어나자 정읍에도 공산군이 들어왔고 두암 마을 주변은 공산군과 반공세력간의 총격전이 수시로 벌어졌다. 두암 마을 성도들은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공산군에게는 눈에 가시와.. 2011. 1. 21.
전남 영암 군서면 구림교회 공산당과 맞서 신앙을 지키다 희생당한 구림교회 순교자들 1922년 구림공립보통학교 교장의 사모였던 김숙자가 김학동, 이신흥 등과 함께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구림리에 예배 처를 마련하면서 구림교회가 시작되었다. 일제강점기에도 복음의 확산과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는 이들이 계속 더하여 갔으며 해방과 함께 나라의 재건과 자립을 위해 힘을 키우는 한편 이 지역 9개 교회를 중심으로 사랑의 나눔이 아름답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1950년 북한군의 남침으로 인한 6.25전쟁의 발발은 평화롭던 영암 땅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영암지역은 월출산의 험준한 산새로 인해 지방 공산당의 은거지와 빨치산의 중요한 활동거점이었다. 유달리 우익성향이 강하고, 기독교의 영향력이 컸던 이 지역에 인민군들.. 2011. 1. 20.
[이탈리아] 피렌체 미켈란젤로 광장(Piazelle Michelangelo) 니콜로 다리 건너 아르노강(江) 오른쪽에 있다. 1871년 조성되었으며, 광장 중앙에 미켈란젤로 탄생 400주년을 기념해 세워진 《다비드》 복제품이 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피렌체의 전경은 널리 알려져 있는데, 아르노강과 그 위를 지나는 유서 깊은 베키오 다리, 붉은 지붕으로 가득한 피렌체가 한눈에 바라보인다. 광장에는 아름다운 풍경을 화폭에 담아 그림을 판매하는 화가들이 여럿 있다. 2011. 1. 15.
[이탈리아] 피렌체 산타크로체 성당(Basilica di Santa Croce) 유럽 전역에서 성행한 고딕양식도 고유의 오랜 전통과 맑은 풍토의 나라 이탈리아에서는 충분히 뿌리내리지 못하고, 극히 적은 예를 제외하면 이 나라 특유의 절충적 작품이 얼마간 있을 뿐이었다. 이 성당도 이러한 과도기의 상황 속에서 생긴 건축의 하나이다. N.피사노의 제자인 아르놀포 디 캄비오의 설계를 바탕으로 1294년에 탁발승단의 프란체스코회수도원 성당으로서 착공, 1442년에 완공되었으나 그 동안에 당초의 설계는 계속 변경되었으며, 말기에는 브루넬레스키도 참가하였다. 전체적으로 보면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의 바실리카를 연상케 하는 T자형의 간결한 플랜에, 폭이 넓은 바닥과 상승감(上昇感)이 없는 낮은 천장 등 모든 면에 걸쳐 고딕 양식과 대립되는 성격이 뚜렷하게 나타나 있다. 물론 열주의 들보 길이와 측.. 2011. 1. 15.
[이탈리아] 피렌체 베키오 궁전(Palazzo Vecchio) 1298년에 착공하여 몇 번에 걸친 개조 공사를 통해 16세기에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1540년에 코시모 공작 1세의 명으로 바사리가 내부를 개조했다. 일찍이 피렌체 공화국(토스카나 공화국)의 청사였던 건물로, 현재도 시청사로 사용되고 있다. 궁전 오른쪽 입구로 계단을 올라가면 대청으로 들어서게 되며, 대청 양쪽 벽면에는 바사리와 그 일파가 그린 메디치의 전투장면이 있다. 3층에는 기를란다요의 로마 영웅들을 표현한 프레스코화가 있으며 그밖에도 마키아벨리 초상화, 프란체스코 1세의 방, 지구의 방 등 옛날 피렌체의 부와 힘을 느끼게 하는 유물들이 많다. 2011. 1. 15.
[이탈리아] 피렌체 산타마리아델피오레대성당(Santa Maria del Fiore) 아르노강(江)의 북쪽, 피렌체시(市)의 중앙부에 자리잡고 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에서 지도적 구실을 한 피렌체에 어울리는 대성당의 실현을 대망하던 시의 결의에 따라 1296년 아르놀포 디 캄비오의 설계로 착공되었다. 공사 도중에 그가 죽자 조토에 이어 A.피사노가 공사를 인계받아, 그 동안 조토가 새로 계획하였던 정면 오른쪽의 대종탑을 거의 완성하였다. 또한 그 뒤를 이어받은 프란체스코탈렌티는 1357년 이래 건물 규모의 확장을 추진하여 1421년경에는 폭 42 m의 삼랑식(三廊式) 회당부(會堂部)와 지름이 이와 맞먹는 광대한 8각 평면의 내진(內陣), 그리고 여기서 세 방향으로 내물린 제실(祭室)을 완성하였다. 한편 시민의 기대를 모았던 대원개(大圓蓋)의 공사는 그것이 광대한 내진 전체를 덮는 구상이었.. 2011. 1. 15.
[이탈리아] 피렌체 산타마리아노벨라성당(Chiesa di Santa Maria Novella ) 1278년 당시의 도미니크파 최대의 성당으로 착공되어, 1300년에서 1350년 사이에 일단 완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설계와 지도는 후라 시스토와 후라 리스트로 두 설교승(說敎僧)이 맡았는데, 이 두 사람은 산타마리아 소프라 미네라 성당의 조영(造營)에도 관계한 건축가로 알려져 있다. 전체의 외관은 얼핏 보아 다소 높고 단순한 바실리카풍으로, 내부는 간결한 교차궁륭(交差穹窿)으로 덮여 있는 3랑식(三廊式) 회당부(會堂部)와 직선적으로 정리된횡당(橫堂)과 내진(內陣)으로 되어 있으며, 경쾌한 궁륭과 이를 지탱하는 날씬하고 아름다운 열주(列柱)를 비롯하여 모든 면에 걸쳐 불필요한 장식을 극력 생략함으로써 명쾌하고 정돈된 공간을 만들어내었다. 현재의 서쪽 정면은, 뛰어난 예술가이며 또한 이론가로 알려졌던 .. 2011. 1. 15.
[이탈리아] 피렌체 산조반니 세례당(Battistero di San Giovanni) 피렌체대성당 앞에 자리잡고 있어 이에 부속된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피렌체에서 가장 오래된 종교건축으로, 그 역사는 로마시대에 세워진 마르스신전(神殿)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현재의 건물은 4세기경에 건조되었던 소성당이 1060∼1150년경에 재건된 것으로, 8각형 플랜의 바실리카 성당이다. 외면은 백색과 녹색의 대리석으로 단장되어 있고, 전형적인 토스카나 지방의 로마네스크 양식을 취하고 있다. 반원 아치 창의 명층(明層)이 있는 2중구조의 내부도 역시 대리석으로 단장되어 있다. 큐폴러(천장) 전면은 심판자 그리스도의 상(像)을 중심으로 천체도(天體圖), 구 ·신약성서의 에피소드, 그리스도와 성모의 생애도(生涯圖), 세례자 요한의 생애도 등이 계층적 배열로 표현된 13세기의 비잔틴풍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2011. 1. 15.
[이탈리아] 밀라노 에마누엘2세 아케이드 두오모 광장 앞 에마누엘 2세 아케이드는 쇼핑 공간인데도 바닥에 프레스코화가 칠해져 있다. 오렌지색 목조 트램은 밀라노의 명품 거리 한 가운데를 가로지른다. 세련된 도시는 고풍스러운 소재들이 뒤섞여 한껏 그 품격을 높이고 있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갈레리아라는 큰 상점가는 반원형 형태로 건축되어 이 두오모 광장을 둘러싸고 있다. 1865년에 짓기 시작해 1877년에 완성된 대규모 아케이드로 유리천장에서 내리비치는 밝은 빛은 지나는 사람에게 산뜻한 느낌을 준다. 2011. 1. 15.
[이탈리아] 밀라노 대성당(Duomo) 1386년 밀라노의 영주 잔 갈레아초 비스콘티의 의견에 따라 대주교 안토니오 디 사루초가 기공하였다. 프랑스나 독일의 대성당에 필적할 만한 것을 조영하기 위해 본국 외에 독일과 프랑스의 건축가를 참가시켰기 때문에, 이탈리아의 성당 건축 가운데 알프스 이북의 고딕적 요소가 가장 짙다. 반면에 설계와 시공에 관한 의견 조정이 지극히 어려워 1577년에야 헌당되었으며, 부대공사 모두가 완료된 것은 1951년이었다. 내부는 5랑식(廊式) 본당, 3랑식 익랑(翼廊), 주보랑(周步廊)이 달린 본전(本殿)으로 되어 있으며, 천장은 측랑(側廊)에서 신랑(身廊)에 걸쳐 계단 모양으로 높아지고 있다. 외부 벽면은 대소의 부벽(扶壁)과 번잡할 정도로 많은 소첨탑(小尖塔)으로 장식되어 얼핏 보아 지극히 호화로워 보이나 통일감.. 2011. 1. 15.
[이탈리아] 밀라노 스포르체스코성(Castello Sforzesco) 15세기 중엽 밀라노 대공 프란체스코 스포르체스코가 세웠다. 브라만테, 다 빈치 등이 건축에 관여했으며, 근대 성채의 전형이라고 일컬어졌으나 제2차 세계대전 중 폭격으로 파괴되었고 현재의 건물은 그후 개축한 것이다. 성 안에는 고미술박물관(Museo d'Arte Antica)이 있다. 기원전의 고미술품으로부터 고대 로마, 중세, 르네상스 시대까지의 작품이 진열되어 있는데 최고 걸작은 미켈란젤로의 《론다니니의 피에타》라는 미완의 대리석상이다. 2011. 1. 15.
[스위스] 루체른 카펠교(Kapellbrücke) 1333년 로이스강에 놓인 다리로, 유럽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긴 나무다리로 길이가 200m에 이른다. 우아한 형태로 루체른의 상징이 되어 있다. 위를 덮고 있는 지붕의 들보에는 스위스 역사상 중요한 사건이나 루체른 수호성인의 생애를 표현한 112매의 삼각형 판화 그림이 걸려 있는데, 이 중에는 17세기 하인리히 베그만의 작품도 10여 점 있다. 다리 중간에 있는 팔각형 석조의 바서투름(물의 탑)은 등대를 겸한 루체른 방위 탑으로, 위급할 때에는 시민에게 경종을 울려 알리는 종각과 감옥소 또는 공문서의 보관소 등으로 쓰였는데 지금은 기념품을 파는 상점이 있다. 밤이 되면 다리 주변에 조명이 들어와 경관이 아름답다. 2011. 1. 15.
[독일] 프랑크푸르트 괴테하우스(Goethe House)  괴테는 1749년 8월 28일 12시 정각에 이곳에서 태어나 여동생 코넬리아와 함께 성장하였으며 괴테에 대한 독일인들의 관심과 애정을 나타내듯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을 피해 괴테의 유품들을 미리 다른 곳으로 옮겨 두었고, 폭격에 의해 파괴된 건물은 4년에 걸쳐 복구시켜 오늘날과 같은 모습으로 관리하고 있다. 4층으로 된 건물 내부의 20여 개의 방은 당시 상류층이었던 괴테와 그 가족의 삶의 흔적을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잘 보존되어 있다. 1층 부엌에는 괴테가 키가 작은 어머니를 위해 직접 고안한 사다리 겸 의자가 있고, 2층에는 중세 악기들이 전시되어 있는 ‘음악의 방’과 파티와 손님 맞이를 위한 방이었던 ‘북경의 방’이 있다. 3층에는 괴테가 태어난 방과 세계에서 가장 .. 2011. 1. 11.
[독일] 프랑크푸르트 뢰머 광장(Römerberg) 프랑크푸르트암마인의 구시가지 중앙에 위치한 광장이다. '뢰머(로마인)'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은 고대 로마인들이 이곳에 정착하면서부터인데 15~18세기의 건물들이 몰려 있다. 광장 주변에는 구시청사와 오스트차일레가 있다. 구시청사는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대관식이 끝난 후에 화려한 축하연을 베풀었던 유서깊은 곳이며, 프랑크푸르트 최초의 박람회가 열린 곳이기도 하다. 1405년부터 시청사로 사용되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때 파괴되었다가 재건되었다. 구시청사 맞은편에 있는 목조건물들을 통칭 오스트차일레라고 하며, 본래는 15세기에 쾰른의 비단상인들을 위해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2011. 1. 11.
[프랑스] 파리동역 ICE 출발지 (TO 프랑크푸르트) 2011. 1. 10.
[프랑스] 에투알개선문(Arc de triomphe de l'?toile) 프랑스 파리의 드골(에투알) 광장 중앙에 있는 석조 개선문. 1806년 나폴레옹 1세가 휘하 군대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하여 계획하였다. 설계는 주로 J.F.샬그랭이 맡았으나 그는 얼마 안 가서 죽고 나폴레옹 자신도 실각하였기 때문에 공사는 중단되었다가 1836년에 이르러서야 겨우 완성되었다. 높이 49m, 너비 45m로 대체로 고대 로마의 개선문의 양식을 따랐으나 프랑스 근세 고전주의의 걸작으로 꼽힌다. 각부(脚部)를 장식한 조각 가운데 F.뤼드의 《라 마르세예즈(進軍)》(1833~1836)은 특히 유명하다. 아치의 중앙 밑에는 제1차 세계대전의 무명용사 묘비가 세워져 있다. 2011. 1. 10.
[프랑스] 콩코르드광장(Place de la Concorde) 동서길이 360m, 남북길이 210m. 파리에서 가장 큰 광장으로, 동쪽은 튈르리 공원에 이어지고 북쪽은 루아얄가(街)를 통해서 마드렌 성당과 마주하며, 서쪽은 샹젤리제거리와 통하고 남쪽에는 센강에 걸린 콩코르드교(橋)가 있다. 광장의 중앙에는 이집트로부터 기증받은 룩소르의 오벨리스크가 서 있고 분수와 조상(彫像)이 있다. 18세기에 루이 15세의 명으로 만들어졌으며, A.J.가브리엘이 설계하였다. 중앙에 루이 15세상(像)이 있어 ‘루이 15세 광장’으로 부르다가 프랑스혁명 때 루이 15세상이 파괴되고 ‘혁명광장’으로 개칭되었다.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 등 1,000여 명이 처형된 곳이기도 하다. 뒤에 다시 ‘화합’을 뜻하는 ‘콩코르드’로 개칭되었다. 2011. 1. 10.
[프랑스] 에펠탑(Tour Eiffel)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하여 프랑스의 교량기술자 A.G.에펠이 설계하여 만든 탑으로 1889년 파리의 만국박람회장에 세워졌다. 높이는 984피트(약 300m)로 그 이전에 건설된 어떤 건물에 비해서도 약 2배에 이르는 높이였다. 재료에는 프랑스에서 제조된 7,300t의 시멘즈 마르탕 평로강(平爐鋼)이 사용되었다. 탑이 만들어지던 당시에는 파리의 경관을 해치는 것이라고 반대가 심하였으나 완공 후 프랑스를 상징하는 조형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탑의 시한인 20년이 지나 1909년에 해체될 예정이었으나 송신탑으로 이용되면서 계속 존속하게 되었다. 탑에는 저층부, 중층부, 상층부 3개소에 각각 전망 테라스가 있으며 각 전망대에서 내려 엘리베이터를 갈아타고 올라가야 된다. 관광객이 붐비는 시즌이면.. 2011. 1. 10.
[프랑스] 세느강(Seine)  프랑스 부르고뉴 ·상파뉴 ·일드프랑스(파리 분지) ·노르망디 등을 거쳐 영국해협으로 흘러드는 길이 776km의 거대한 강이지만 파리의 센강은 마치 도심의 수로처럼 작게 느껴진다. 센강변이 세계적인 관광지로 각광을 받는 이유는 아마 이곳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많은 시와 노래 그리고 예술가들 때문일 것이다. 유람선이 운행하는 구간인 시테섬 주변으로는 파리의 유서깊은 건축물들이 늘어서 있어 센강의 아름다움을 더한다. 루브르박물관, 오르세미술관, 노트르담대성당 등 화려한 건축조각이 센강변을 장식하고 있으며, 연인들의 다리로 알려진 퐁네프, 화려한 조각으로 장식된 알렉상드르3세교, 앵발리드 교 등이 이곳 정취에 흠뻑 빠져들게 한다. 화려한 조명과 함께 시작되는 센강의 저녁은 유람선 선상의 디너 파티와 강변으로 .. 2011. 1. 10.
[프랑스] 퐁피두센터(Centre Georges Pompidou) 프랑스 파리의 보부르에 있는 예술·문화 활동의 여러 기능이 집결된 건물. 정식명칭은 국립 조르주 퐁피두 예술 문화센터(Centre National d’Art et de Culture Georges-Pompidou). 너비 166m, 안길이 60m, 높이 42m. 소재지구의 명칭을 따서 보부르센터라고 통칭되기도 한다. 도서관(BPI), 공업창작센터(CCI), 음악·음향의 탐구와 조정 연구소(IRCAM), 파리국립근대미술관(MNAM) 등이 있으며, 이 센터의 창설에 힘을 기울인 대통령 G.퐁피두의 이름을 붙여 1977년에 개관하였다. 설계 공모를 통해 이탈리아인 R.피아노와 영국인 R.로저스의 공동설계가 채택되었다. 거대한 철골 트러스 속에 여러 시설을 위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으며, 설비 배관이 적색과 청색.. 2011. 1. 10.
[프랑스] 바스티유광장(Place de la Bastille) 영국과의 100년전쟁 기간 푸아티에(Poitiers)에서 프랑스가 패배하자 외세 침략으로부터 파리를 지키기 위하여 바스티유 요새( 높이 22m, 폭 4m)를 건립하였다. 뒤에 정치가 리슐리외(Richelieu)가 이곳을 감옥으로 바꾸었는데, 수용자 대부분이 왕정에 반대하는 세력이었다. 이후 이곳은 악명이 높은 군주정 전횡의 상징이자 프랑스 대혁명의 시발점이 되는 역사적 장소가 되었다. 1803년 빅토르 위고가 그의 작품 에서 언급하였던 코키리상의 분수대가 세워졌으나, 현재는 1830년 7월 혁명을 기념하기 위한 '7월 기념비(Colonne de Juillet)'만 남아 있다. 높이 53m에 이르는 기념비는 1830년 7월 혁명 당시 희생된 504명과 1848년 혁명 때 희생된 196명을 기리기 위한 것으.. 2011. 1. 10.
[영국] 런던 감리교본부 런던 감리교본부 건물 2011. 1. 7.
[영국] 런던 타워브릿지(Tower Bridge)  런던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건축물 중의 하나이다. 19세기에 런던이 발전함에 따라 템즈강을 건너려는 사람들도 많아 졌다. 런던교의 서쪽으로만 다리가 지어지다가 동쪽에도 다리를 지으라는 시민들의 탄성이 높아만 갔다. 그래서 지어진 것이 타워교이다. 이 다리의 특징은 대형 선박이 지나갈대 다리 가운데가 올라간다는 점이다. 가동 부분의 위로 보행자가 다닐 수 있는 길이 설치되어 있어 배가 통과하는 동안 엘리베이터를 오르내리게 하여 사람들이 다리를 건너가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곳에서 자살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 1909년 이후 중지하였다. 2011. 1. 7.
[영국] 옥스퍼드대학교(Oxford University)  1096년 이래 옥스퍼드에 흩어져 있던 학교들을 12세기에 헨리 2세가 통합하여 세운 것으로, 영국은 물론 영어권에서 최고(最古)의 대학이다. 1249년에 최초로 학료(學寮)를 설립, 대륙에서 번영하던 파리대학을 모방하여 조직하였다. 대학 설립 초기에는 학생과 시민 간에 과격한 충돌이 자주 일어났는데, 1354년 충돌이 있은 다음해에 에드워드3세가 학생 편을 지지하여 그들에게 특허장(特許狀)을 줌으로써 대학의 지위가 견고해졌다. 교육내용으로 자연철학 ·도덕철학 ·형이상학 등을 강의하였는데, 모두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기본으로 삼았다. 14세기에는 J.위클리프 교수가 교회의 악폐를 비판함으로써 영국의 종교개혁 운동에 선구적 역할을 하게 되었다. 15세기에 와서는 종교적 기초가 동요하면서 침체 경향을.. 2011. 1. 7.
[포르투갈] 리스본 제로니무스 수도원(Mosteiro dos Jeronimos)  오랜 세월을 견뎌내고 여전히 그 위엄을 자랑하고 있는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16세기 포르투갈의 영광을 자랑하는 건축물이다. 수도원은 마누엘 1세(1469~1521)가 바스코 다 가마의 해외원정에서 벌어온 막대한 부를 이용하여 건설했다고 한다. 거대한 외관과 달리 내부는 매우 소박하며 아기자기하다. 수도원인만큼 화려한 장식은 없지만 곳곳에 보이는 조각이나 장식들이 섬세하다. 테주 강쪽의 남문 위쪽 벽에는 엔리케 항해왕의 상이 조각되어 있고, 그 위에 성서를 라틴어로 번역한 히에로니무스의 생애가 조각되어 있다. 25m의 높은 천장을 받치고 있는 기둥들은 대항해시대의 작품답게 해양과 관련 있는 모티브로 장식되어 있다. 수도원에는 중요한 인물의 관이 모셔져 있다. 희망봉을 돌아 인도항로를 발견한 바스코 다 가.. 2011. 1. 7.
[포르투갈] 리스본 벨렘탑(Torre de Belem) 에펠탑이 파리를 상징하듯 벨렘탑은 리스본을 상징하는 건축물이다. 바다와 강이 만나는 지점에 서 있는 이 탑은 당초 물 속에 세워졌으나, 테주강의 흐름이 바뀌면서 물에 잠기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1515~1521년에 건설되었으며 나비가 물 위에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 마누엘 양식의 3층 탑이다. 아름다운 테라스가 있는 3층은 옛날 왕족의 거실로 이용되었으며, 지금은 16~17세기의 가구가 전시되어 있다. 2층은 포대로 항해의 안전을 수호하는 '벨렘의 마리아 상'이 서 있다. 1층은 스페인이 지배하던 시대부터 19세기 초까지 정치범 감옥으로 사용되었다. 스페인 지배에 저항하던 독립운동가, 나폴레옹 군에 반항하던 애국자, 진보주의자들이 만조 때에는 물이 들어오고 간조 때에는 물이 빠지는 이 감옥에서 고통스.. 2011. 1. 7.
[포르투갈] 로카 곶(Cabo da Roca)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에서 국철로 1시간 거리의 신트라. 이곳에서 40분만 버스를 더 타면 유라시아 대륙의 끝인 로카 곶(Cabo da Roca)에 닿을 수 있다. 오전에는 신트라관광을,오후에는 로카 곶을 찾아 일몰을 보면 당일치기 최적의 코스다. 시골 마을같은 정취를 풍기는 신트라는 로카 곶 여행의 출발점이다. 옛날 북아프리카 무어인들이 지배하던 이곳은 그들의 양식과 서양 양식이 혼재된 건물들이 가득하다. 이곳의 3대 볼거리는 왕궁,페냐 성,그리고 무어인의 성터다. 왕궁은 외부에 보이는 두개의 굴뚝이 독특하다. 이 굴뚝은 부엌으로 쓰인다. 페냐 성은 무어 양식과 포르투갈 고유양식이 합쳐진 낭만주의 시대의 건물로, 갖가지 파스텔 톤으로 칠해진 외관이 눈길을 끈다. 무어인의 성터는 그들이 북아프리카로 간 뒤.. 2011. 1. 7.
[스페인] 마드리드 에스파냐 광장(Plaza de España, Madrid) 마드리드의 최고 번화가인 그란비아가 시작하는 곳에 있다. 사람들이 풀밭에 눕거나 벤치에서 휴식을 취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광장 중앙에는 에스파냐의 대표적인 작가 세르반테스 서거 300주년을 기념하여 세운 기념탑이 있다. 탑 앞에는 에스파냐의 유명한 작가 세르반테스 동상과 소설 속 두 주인공인 로시난테를 타고 있는 날씬한 돈키호테와 당나귀를 탄 뚱뚱한 산초판자 동상이 있다. 2011. 1. 5.
[스페인] 세비야 대성당(Cathedral) 유럽에 있는 성당 중 세번째로 큰 성당이다. 가장 큰 규모의 성당은 로마의 산 피에트로 대성당이고 두번째는 런던의 세인트 폴 대성당이다. 대성당이 있는 자리에는 12세기 후반에 이슬람 사원이 있었던 곳이다. 이슬람 사원은 사라졌지만 넓은 폭의 형태는 메카에 가까울수록 좋다는 이슬람 사원의 영향이다. 1402년부터 약 1세기에 걸쳐 건축되었으며 오랜 시기에 건축된만큼 고딕·신고딕·르네상스양식이 섞여 있다. 이곳에는 세비야를 이슬람교도로부터 되찾은 산 페르난도 왕을 비롯하여 스페인 중세기 왕들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남쪽 문 근처에는 콜럼버스 묘가 있는데, 스페인의 옛 왕국인 레온, 카스티야, 나바라, 아라곤을 상징하는 조각상이 관을 메고 있다. 이 관에는 콜럼버스 유골분이 안치되어 있다. 2011. 1.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