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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바울이 감옥에 갇혔던 빌립보 네압볼리에서 역사적인 하룻밤을 보낸 나는 택시를 빌려 그리스의 북부지역에 있는 빌립보로 향했다. 빌립보(필리피·Philippi)는 에게해에서 내륙으로 16㎞쯤 들어가 산으로 둘러싸인 평지에 있는데 남쪽으로는 심볼론 해변 지역,북쪽으로는 발칸 고대의 지방,서쪽으로는 판가이온,그리고 동쪽으로는 오르벨로스와 접해 있다. 네압볼리에서 바로 북서쪽으로 높은 언덕길에 오르자 네압볼리 항구가 한눈에 들어왔고 다시 내리막길을 지나 평지를 달리자 왼쪽으로는 바울이 걸어갔던 로마때 만들어진 에그나티아 가도가 숲 사이로 보였다. 바로 성경에 나오는 바울이 복음을 들고 유럽 선교를 위해 지나갔던 길이다. 바울은 기독교 역사상 최초의 선교사이며 최고의 복음 전도자였다. 그로 인해 유럽 선교의 장이 열렸다. 지금은 아스팔트 길에.. 2019. 10. 15.
[그리스] 베뢰아 [Berea] 데살로니카의 서쪽 80km, 해안에서 40km 내륙에 있다. 바울로는 제2차 전도여행 때 데살로니카에서 쫓겨나 실라와 함께 여기에 와 전도하여 큰 성과를 올렸다. 바울로 전도 당시에는 도시가 번영해 있었다. 로마가 마케도니아를 정복한 퓨드냐의 싸움 후 마케도니아는 로마에 항복한 최초의 도시였다. BC 49~48년 겨울에는 폼페이우스의 보병부대 주본부가 있었다. 로마에서 아시아로 통하는 에그나티아가도(Via Egnatia)에서는 남쪽으로 조금 벗어나 있었으나 비교적 번창했던 도시로, 유대인도 많고 그들의 회당이 있었다. 신약성서에도 이 지역이 언급되어 있다. 베뢰아 사람들은 성서에 대한 좋은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언급되어 있다. 《사도행전》 17장 11절에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카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 2019. 10. 15.
[그리스] 바울 2차 전도여행지 데살로니카, 베뢰아[Beroea] 암비볼리를 출발하여 에게해의 오르파노스 만(Orfanos Gulf)을 따라 약 24㎞를 달린 후 다시 내륙으로 22㎞를 달려가야 아볼로니아가 나온다. 그리고 아볼로니아에서 데살로니가 항구까지는 60㎞를 달려야 했다. 아침에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를 거쳐 데살로니가까지 오자 어느 새 점심시간이 지났다. 그 옛날 바울도 2차 전도여행 때 디모데 및 실라와 함께 빌립보에서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를 거쳐 데살로니가에 왔었다. 먼저 항구 근처의 바닷가에 이르자 화이트 타워라 불리는 망대가 세워져 있었다. 알고보니 그 탑은 도시의 상징이었다. 오늘날 테살로니키(Thessaloniki)로 불리는 성서의 데살로니가는 현재 그리스의 살로니카(Salonika) 만에 있는 옛 마게도냐의 중요한 항구 도시이다. 데살로니가는 알렉.. 2019. 10. 15.
SU 이집트/요르단/이스라엘 10일 ■ 3,490,000원부터~ ■ 2019년 7월 9일 ~ 7월 18일 (9박 10일) ■ 인천-모스크바-카이로-룩소-암만-느보산-페트라-요단강-사해-갈릴리-예루살렘-베들레헴-모스크바-인천 ▣ 포함사항 ▣ 불포함사항 1. 왕복항공료, 전용버스 2. 전일정 숙박 및 식사 (기내식 포함) 3. 일정표에 표기된 입장료 및 국경통과세 4. 한국인가이드 5. 해외여행자보험 1억원 1. 가이드/기사 팁 [$100~150/1인당] 2. 호텔/포터/식당 팁 3. 물값 및 음료 4. 쇼핑 및 선택관광 5. 개인경비 * 문의 : 이재용 부장 010-6244-5936 인천국제공항 2 터미널 제 1 일 2019-07-09 (화) 10:00 인천국제공항 2터미널 3층 러시아항공 집결 13:10 인천 출발 (09:15소요) SU2.. 2019. 3. 23.
[그리스] 고린도 비마 [BEMA] 그리스 고린도 비마 성지순례여행 동영상 가이드 : 이한서 사장님 뜻 : 뿔 그리스 반도와 대륙을 연결하는 지협 남단에 잇으며 겐그리아 항구와 로마의레기온 항구를 연결하고 지중해의 동서를 연결하는 묘한 지형으로 상업과 물 질적인 변영을 누린 도시요 잡다한 인종들이 많이 모여 살고 있어 동서 문화 와 종교의 혼잡을 이루었다. 고린도의 종교중에 여사 프로디트라는 우상이 있어 600피트나 되는 산상에 무녀가 무려 1,000명이나 있고 이로 인하여 고린도인들은 음탕한 풍습에 젖어 고린도라하면 음행한 사람의 대명사가 되었다. (1) 바울이 2년을 선교하여 교회를 설림(행 18:1-8). (2) 교인 전체의 수가 상당히 많은 것으로 예상된다(고전 1:26). (3) 바울의 동역자 그리스보 (행 18:8)가이로 에라스.. 2018. 12. 9.
[그리스] 고린도 ● 코린토스 운하 코린토스 지협은 그리스 본토와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잇는 가느다란 땅이다. 길이는 약 15킬로미터이고, 너비는 가장 넓은 곳이 6킬로미터 가량이고, 가장 높은 곳이 해발 90미터를 넘지 않는 야트막한 언덕이다. 지금 이 지협은 코린토스 운하에 의해 끊겨 있다. 이제 펠로폰네소스는 엄밀한 의미에서 반도가 아니고 섬인 셈이다. 코린토스 운하는 수에즈 운하를 팠던 프랑스의 토목 기술자 레셉스가 1882년에서 1893년까지 12년간의 대역사를 벌여 완성한 운하이다. 길이는 6.4킬로미터 정도에 너비는 25미터, 깊이는 8미터 정도이다. 운하에는 32미터 길이의 다리가 두 개 걸쳐져 있다. 이 다리의 높이는 약 60미터 정도이다. 운하를 지나는 배는 1노트에서 3노트의 속도를 유지해야 하는데 이를.. 2018. 12. 9.
[이스라엘] 음식과 역사 이스라엘 음식문화 이스라엘의 음식은 세계의 다양한 음식들이 모여있어 비교적 선택의 폭이 넓은 음식이다. 중동의 교통요지에 위치하여 오랜 역사를 통해서 정복자들, 교역자들, 식민지 관리 등이 3,000년이상 여러 대륙과 제국으로부터 이스라엘에 도착하고 이들이 각족의 음식문화와 맛을 소개시켜와서 조화를 이루게 된 것이 이스라엘 음식문화의 배경이다 로마, 그리스, 터키, 유럽십자군, 회교도들이 역사에 걸쳐 고대 이스라엘 음식에 자취를 남긴 것이 오늘날 이스라엘의 음식이라 하겠다. 비록 이스라엘 국토의 절반이상이 사막이지만 이스라엘은 농업기술과 농산물 수출로 유명하다. 실제로 사막에서 토마토 등 야채를 기르고 있다. 자연에서 신선하고 다양한 야채와 과일이 소출되어 성서에 언급되는 종류로부터 동남아시아의 열대과일.. 2018. 12. 9.
[이스라엘] 벧산 [Beit She'an] 아랍어로는 베이산이라고 한다. 요르단지구(地溝)의 북부, 요르단강(江)에 가까운 해면 약 200m 지점에 위치한다. 기후는 건조하며, 특히 여름은 찌는 듯이 덥다. BC 4000년경에 이미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주거지가 발굴된 이래 부근 일대는 고고학상으로 중요한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고대로부터 이집트와 시리아, 메소포타미아 방면을 연결하는 도로상의 교역중심지로서 발전했다. 또한 전략상의 요지로 많은 지배자가 교차되었으나, 로마제국·비잔틴 제국의 치하(治下)에서는 팔레스타인 최대도시로 성장했다. 관개농지도 발달했으나 636년에는 아랍인(人)의 침입을 받았고, 후에는 십자군에게 점령되어, 탕크레드에 의해서 성새화(城塞化) 되었으나, 사라딘에게 약탈되었다. 1519년 오트만 제국의 일부가 되고, 한지방의.. 2018. 12. 8.
[이스라엘] 정원무덤 [Garden Tomb] 정원 무덤은 가든 툼 또는 무덤동산이라고도 불리며, 예수 그리스도가 매장되었다가 부활한 장소라고 여겨지는 곳 중의 하나이다. 예루살렘 구 시가지의 다마스쿠스 문 밖으로 약 300여미터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1882년에 영국의 찰스 고든(Charles George Gordon) 장군이 처음으로 이곳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망 장소라고 주장했다. 고든은 성경의 요한복음(19장 14절, 38-42절)에 근거해서 정원 무덤이 있는 언덕의 모습이 해골의 형상을 하고 있으므로 이 곳이 골고다 언덕에 해당되며, 레위기(1장 11절)에 근거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사망한 뒤 장사되어 묻힌 곳은 성전산 북쪽인 정원 무덤이며, 기존에 예수의 무덤으로 알려진 성묘교회(Church of the Holy Sepulchre)는 성전산.. 2018. 12. 8.
[이스라엘] 갈릴리 가버나움(Capernaum) 예수의 갈릴리 선교 본부로서 3년 동안의 공생애 활동의 가장 중요한 중심 도시 가운데 하나다. "예수께서 요한의 잡히심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 가셨다가 나사렛을 떠나 스블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 (마 4:12 ~ 13), 복음서의 여러 곳에서 이 도시를 '그의 고향' (his own city), 혹은 '그의 도시'라 부르고 있다. (마 9:1, 막 2:1) 이곳은 고대로부터 '해변의 길' (Via Maris, 사 9:1) 이라는 남북을 연결하는 매우 중요한 통로에 위치하고 있으며, 헤롯 빌립과 안티파스의 경계로 많은 이방인을 포함한 사람들 - 군인, 상인, 여행자 등 - 이 왕래하는 길목으로서 선교적 차원에서 중요한 곳이라 여겨진다. 예수의 사역 중에도 로마의 백부장과의.. 2018. 12. 8.
[이스라엘] 예루살렘 카르도 Cardo 예루살렘 성 안 유대인지구 비잔틴시대의 도로 카르도 cardo - 6세기 예루살렘의 중심도로 2018. 12. 8.
[이스라엘] 예루살렘성 통곡의 벽 = 서쪽벽 (The Wailing Wall) 오랫동안 '통곡의 벽' (the Wailing Wall)이라 불리고 있는 이 성벽은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있는 성전 서쪽벽을 일컫는다. 최고 14 m 의 길이와 400 t 이나 되는 돌을 비롯하여 평균 1 ~ 3 t 의 돌을 이용하여 쌓은 높이 16 m의 이 성벽은 헤롯 대왕 때의 것으로 그가 왕위에 오른 이후 건축이 시작되어 약 60여년 동안이나 걸려 지은 것들이다. 이 헤롯의 성은 AD 70년 로마에 의해 멸망당할 때 지렛대로 "돌위에 돌하나 남지 않도록" 무너뜨렸으나, 지금까지 남아 있는 통곡의 벽 아래 부분은 당시의 위용을 보여주고 있다. 본래 예루살렘 성전의 서쪽은 골짜기가 지나가고 있어 성전과 윗도시 (Upper city)와 연결하기 위하여 헤롯은 골짜기 위를 지나는 다리를 설계하여 설치해 놓았.. 2018. 12. 8.
[이스라엘] 쿰란 QUMRAN 사해 북쪽 해안 약 5km 남쪽 길 서쪽 언덕이 쿰란이다. 이 쿰란이란 이름은 그 언덕 옆을 지나는 쿰란 와디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다. 이 쿰란이 유명해지기 시작한 것은 1947년으로, 이 쿰란 주위의 동굴들에서 BC 2세기경의 성경 사본과 성경의 주석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이 성경 사본이 사해 주변에서 발굴되었다고 하여 “사해 사본” 이라고 하기도 하고, 쿰란 주위에서 찾았다 하여 “쿰란 사본” 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지금은 이 사본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이스라엘 국립 박물관 내의 사해 사본 보관소(The Shrine of the Book)에 보관되어있고 록펠러 박물관에서 연구되고 있다. 1947년 베드윈 양치기 소년이 염소를 잃어버렸다. 염소를 찾아다니다가 혹시 염소가 동굴 속에 숨어있을까 하여.. 2018. 12. 8.
[프랑스] 사크레 쾨르 대성당 [Basilica of the Sacred Heart of Christ] 사크레 쾨르 대성당(예수 성심 대성당)은 파리의 사랑받는 랜드마크이다. 새하얀 트래버틴 대리석으로 지은 조화로운 건축물로 파리에서 가장 높은 몽마르트르 언덕의 꼭대기에 서 있다. 83미터 높이의 돔에서는 남쪽으로 약 30킬로미터 전방에 이르는 멋진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1919년 축성된 사크레 쾨르는 교구 성당이 아닌 바실리카로, 예수의 성심에 경배하는 순례지이자 독립된 성소이다. 설계를 맡은 건축가는 폴 아바디 Jr.(1812~1884년)였으나 그가 1884년 사망하자 다섯 명의 건축가가 뒤를 이어 작업을 계속했다. 이 중 맨 마지막 주자인 루이-장 윌로는 84미터 높이의 종탑과 명상을 위한 종탑과 연못을 지었다. 그는 또 기념비적인 조각상을 주문하기도 했다. 아바디는 사크레 쾨르를 설계하기 전에 .. 2018. 12. 2.
[프랑스] 노트르담대성당(Cathedrale de Notre Dame) 센강(江) 시테섬에 있는 파리의 노트르담대성당(Cathedrale Notre-Dame de Paris)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성당이라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트르담(Notre-Dame)'은 가톨릭에서 쓰는 ‘성모 마리아’에 대한 존칭이며 프랑스어로는 '우리들의 귀부인'이라는 뜻이다. 성당을 짓는 공사는 1163년 주교 M.쉴리의 지휘 아래 내진(內陣) 건축이 시작되었고, 1330년 완공되었으나 그 후에도 부대공사는 계속되어 18세기 초엽 측면 제실(祭室)의 증설로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170년에 걸쳐 만들어진 고딕양식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그러나 18세기 프랑스혁명 때 건물이 심하게 파손되어 19세기에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하였다. 1831년 발표된 빅토르 위고(Victor Hugo)의.. 2018. 12. 2.
[경향신문] 종교개혁 현장에서 한국 교회를 보다. 스위스 제네바, 장 칼뱅의 종교개혁 개신교는 중세 로마 가톨릭의 극심한 도덕적·물질적 타락에 맞선 종교개혁 운동을 통해 태어났다. 교회가 진정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도록 하기 위해 종교개혁 운동이 벌어졌고, 그 결과로 개신교가 가톨릭에서 분리돼 거듭난 것이다. 약 500년 전 중세시대의 개혁을 지금 다시 이야기하는 것은 한국 개신교회가 당면한 현실 때문이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애쓰는 목회자,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는 신자들도 많지만 한국 개신교회는 그 어느 때보다 ‘개혁’을 요구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 세속화에 따른 물질적 타락은 물론이거니와 성장제일주의, 교권주의, 거듭되는 분열, 기복신앙화 등으로 오히려 사회적 비판의 대상이 될 정도다. 새에덴교회(담임 소강석 목사)의 독일, 스위스, 체코의 종교개혁 순례(3~10일)에 동행했다.. 2018. 12. 2.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그 [Strasbourg] 인구는 26만 3940명(1999)이다. 독일어로는 슈트라스부르크(Strassburg)이다. 파리의 동쪽 447km, 라인강(독일 국경)의 서쪽 약 3km 지점에 위치하며, 그랑테스트의 경제·문화 중심지이다. 또 유럽 전체의 교통의 요지이며, 라인강(江)과 론강(江)·마른강(江)을 잇는 운하가 시의 동쪽에서 합류하여 큰 하항을 이루는 동시에 육상교통도 발달하였다. 공업이 활발하여 철강·기계·화학·전기·섬유·제분·식품·양조 공장 등이 있고, 스위스·독일과의 교역량도 많다. BC 15년 로마시대에 아르겐토라툼이라 일컬어졌는데, 455년에 훈족(族)의 침입으로 파괴되었다가 그 후 복구되어 스트라테부르굼(大路의 도시)이 되었다. 842년 최초의 프랑스어 문헌인 ‘스트라스부르 맹약’이 만들어졌다. 855년부터는 .. 2018. 12. 2.
[독일] 하이델베르크 [Heidelberg] 하이델베르그(Heidelberg)는 예로부터 예술과 교육의 도시로 알려져 있으며 이곳을 찾는 모든 이들을 매료시킬 만큼 시정이 넘치는 도시이다. 유유히 흐르는 네카강 건너편 언덕 중턱에 길게 누워있는 철학자의 길을 따라 거닐며 내려다 보이는 붉은 벽돌색 지붕의 대학가와 구 도시, 그 위에 떠 있는 듯한 고성의 모습 등, 모든 경치가 한 폭의 그림이 되어 버린다. 하이델베르그 고성은 독일의 대표적인 관광지로서 13세기부터 팔츠 선제후인 비테르스바하 가문의 역대 왕들이 건축한 성으로 고딕에서 르네상스 양식으로 개축하였는데, 17세기 오를레앙 계승전쟁시 프랑스의 루이14세 군에 의해 파괴되었다. 1386년 선제후 루프레히트1세가 세운,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인 하이델베르그 대학은 현재까지 7명의 노벨상 수.. 2018. 12. 2.
[독일] 라이프치히 니콜라이 교회 [St. Nikolaikirche] 니콜라이 교회는 성 토마스 교회와 함께 라이프치히 기독교계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중요한 곳이다. 또한 1989년에 시작되어 1990년 10월 3일에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린 평화 혁명이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1165년에 처음 건축되었고, 15세기와 16세기를 지나면서 후기 고딕 양식으로 완성되었다. 1539년에 종교개혁자인 마틴 루터와 유스투스 요나스 1세가 이곳에서 설교를 함으로써 본격적인 종교개혁이 시작되었다. 그 후 1784년부터 니콜라이 교회가 작센주의 개신교 본부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교회 내에 있는 오르간은 1862년에 만들어졌는데, 19세기에 바흐의 오르간 곡들이 많이 연주되었다. 1980년대 초부터 공산주의 정권에 대항해 월요일마다 열렸던 월요데모(Montagsdemonstrationen).. 2018. 12. 2.
[독일] 라이프치히 토마스교회 교회건물과 그 역사 1355년에는 성가대석이 로마네스크 양식에서 고딕양식으로 개조되었습니다. 성가대석의 북측에 있는 창, 탑의 아래층, 남북으로 넓힌 바형부 그리고 그 둥근 천정과 콘솔레(버팀대)는 1355년전에 된 것입니다. 15세기 말에 [에르쯔게비르게 (Erzgebirge)]산지에 은히 발견됨으로 라이프찌히는 부유한 경제도시가 됩니다. 이 결과로 라이프찌히 교회들은40년이내에 개축과 증축이 됩니다. 1482년에 토마스교회는 로마네스크양식의 중랑을 철거하고 새로운 후기 고딕 양식의 홀형 교회가 개축되어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1496년에 제막식이 이루어졋습니다. 그 후는 1702년의 탑이 완성되기 까지 토마스교회의 건물은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17세기에 된 예배당과 증축부와 장당의 북측 전체.. 2018. 12. 2.
[오스트리아] 비엔나 지그문트 프로이트 박물관 [Sigmund Freud] 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학자 지기스문트 슐로모 프로이트는 1856년 5월 6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모라비아의 작은 도시 프라이베르크에서 태어났다. 유대계 사업가인 그의 아버지는 40세 때 20세의 여성과 재혼해 7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그중 맏이가 바로 ‘지기’였다. 얼마 후 프로이트 일가는 빈으로 이주했으며, 당시 다섯 살이었던 ‘지기’는 훗날 나치의 탄압으로 망명을 떠날 때까지 무려 70년 넘게 이 도시에 살았다. 비록 인종차별이 있긴 했지만 빈의 유대인은 다른 유럽 여러 지역에 비해서는 현지인과 잘 융화되어서, 당시 그곳의 의사나 변호사 같은 전문직 가운데 절반가량이 유대인이었다. 1873년, 빈 의과대학에 입학한 지기스문트(Sigismund)는 이때부터 이름을 지그문트(Sigmund)로 바꾼다... 2018. 12. 2.
[이탈리아] 로마 카타콤베 [Catacomb] 초기 그리스도 교도의 지하묘지. 나폴리 ·시라쿠사 ·몰타 ·아프리카 ·소(小)아시아 등의 여러 지방에서 볼 수 있는데, 특히 로마 근교에 많다. 카타콤은 원래 그리스어 ‘카타콤베’로 ‘낮은 지대의 모퉁이’를 뜻하며, 로마 아피아 가도(街道)에 면(面)한 성(聖)세바스찬의 묘지가 두 언덕 사이에 있었기 때문에 3세기에 이 묘지의 위치를 표시하기 위해 이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다. 중세까지만 해도 지하묘지로서 알려진 것은 이 묘지뿐이었으나, 16세기에 초기 그리스도 교도의 지하묘지가 발견되고부터는 모든 지하묘지를 카타콤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와 같이 지하에 묘지를 두는 풍습은 동방에서 전래되었으나 그리스도 교도에 대한 박해가 심해지면서 지하묘지의 풍습이 더욱 성행한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그러나 게르만 침입 .. 2018. 12. 2.
[이탈리아]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 [San Pietro Basilica] 바티칸에 있는 대성당. 성베드로대성당이라고도 한다. 가톨릭의 총본산으로서 유럽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교황청의 산피에트로대성당 관리 성성(聖省)의 관리하에 있다. 그 역사는 깊어서 기원으로 말하면 성(聖)베드로의 무덤 위에 세워진 4세기의 바실리카식 성당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16세기 미켈란젤로를 비롯한 당시의 대표적 건축가들에 의해 전성기(全盛期)를 맞은 르네상스의 건축이념에 바탕을 두고 재건되었다. 15세기에 한 번 시도되었다가 중단되었던 구당(舊堂)의 개수계획을 재개하기 위해 1506년 교황 율리오 2세가 저명한 건축가 D.브라만테에게 명하여 본격적인 공사에 착수하게 하였다. 브라만테는 그리스 십자식플랜의 중심에 대원개(大圓蓋)를 얹고, 네 구석에 한 개씩의 작은 원개를 얹는 구상을 세운 듯.. 2018. 12. 2.
[독일] 아이제나흐 [Eisenach]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가 학창시절을 지낸 아이제나흐(Eisenach)는 독일의 수도 베를린(Berlin)에서 약 400여km 떨어진 작은 도시인데 자동차의 도시로도 알려져있고 독일 통일이후에는 오펠자동차의 생산공장이 가동되고 있다. 1067년부터 1170년까지 후기 로마네스크양식으로 지어진 바르트부르그성은 가장 독일다운 중세의 성인데 13세기 초반부터 많은 시인과 민네젱어라 불리는 민중예술인들이 초대되었다. 그 중 유명한 폰 포겔와이데와 볼프람 폰 에센바하등이 경쟁하던 모습은 벽에 그려진 탄호이저의 노래시합 장면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 성에는 루터스투베라는 매우 검소한 방이 있는데 1521년 5월부터 시작하여 10개월동안 마틴루터가 신약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해 낸 방이다. 마틴루터는 1498년부터 대학진학을.. 2018. 12. 2.
[체코] 프라하 구시청사와 천문시계 프라하 구시청사 구시청사는 프라하 유적보전지구 중심부에 위치한 가장 아름다운 유적입니다. 14세기부터 단계적으로 민간가옥을 매입한 후 하나로 연결하였습니다. 현재는 5개의 유서깊은 건물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건축물들은 거의 모든 시대별 건축 양식을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 구시청사는 프라하와 체코 역사의 산 증인이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구시청사에서 포데브라드의 조지 왕이 체코의 왕으로 선출되었으며, 구시청사 뜰에서는 후스파의 강경파 지도자였던 얀 젤리브스키가 처형되었습니다. 후에 구시청사는 체코 귀족 항거 참가자들의 집단 처형장면도 지켜봐야 했습니다. 2차 대전 말에는 나치 점령자들의 공격에 맞서야 했으며, 청사의 상당부분이 그로 인해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가까이서 보는 12사도 이미 수 백년 동.. 2018. 12. 2.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SALZBURG 세계적인 천재음악가 모짜르트가 태어나고 활약했던 잘쯔부르그(Salzburg)는 잘쯔부르그 주의 수도로 Salzach(잘짜흐)강을 끼고 발달한 교육, 음악, 관광, 휴양도시이며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 사방으로 이어지는 교통의 요지이기도 하다. 중세 때 주변에 많이 나는 소금을 매개로 각국의 상인들이 모여드는 상업도시였던 잘쯔부르그는 그 뜻이 ‘소금성’으로 해석된다. 잘쯔부르그는 특히 ‘여름 음악축제’와 줄리 앤드류스의 'Sound of Music'의 무대로 세계적으로 유명하며 이곳에는 오스트리안 로마로 알려진 건축물들로 가득 차 있어 여행자들은 이곳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입을 모은다. 또한 모짜르트의 아내 마리안네와 하이든이 잠들어 있는 성 페터 묘지가 잘쯔부르그에 있으며 전세계적으로 애창되는 .. 2018. 12. 2.
[스위스] 융프라우산 [Jungfrau] 알프스 융프라우 지역 신이 빚어낸 알프스의 보석 단언컨대 스위스 융프라우는 세계의 알짜 명소다. 여행자들의 로망인 런던, 파리에 이어 누구나 유럽여행 중에 꼭 한 번쯤은 들려봤음 직한 단골 방문지이며, 또 귀에 박힐 정도로 익숙해진 곳이다. 사실 융프라우는 알려진 겉모습보다는 속살이 더 옹골지고 매혹적이다. ‘신이 빚어낸 알프스의 보석’이라는 칭송을 받는 데는 숨겨진 이유가 있다. 융프라우의 높이는 4,158m다. 아이거, 묀히와 더불어 융프라우 지역의 3대 봉우리 중 최고 형님뻘이지만, 이름에 담긴 뜻은 아이러니하게도 ‘젊은 처녀’다. 그러나 수줍은 처녀처럼 그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내는 날은 그리 많지 않다. 산 밑 인터라켄의 날씨가 화창하더라도 융프라우는 구름에 만년설로 덮인 알몸을 열었다 닫았다 하.. 2018. 12. 2.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Louvre Museum]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궁전을 미술관 건물로 사용하고 있으며, 소장된 미술품의 규모는 세계 최대이다. 원래 루브르궁에는 역대 프랑스 국왕들, 특히 프랑수아 1세, 루이 13세, 루이 14세 등이 수집해 놓은 방대한 양의 미술품이 소장되어 있었는데 프랑스 혁명 후인 1793년 국민의회가 그것을 공개하기로 결정함으로써 미술관으로 정식 발족하고 그 뒤로도 꾸준히 미술품 수집이 계속되어 오늘날의 세계 3대 미술관 안에 드는 대미술관이 이루어졌다. 약 30만 점의 소장품이 있으며 그 중 2만 5천점이 전시되고 있다. 동서로 약 1km, 남북으로 약 300m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한다. 미술관다운 건물을 만들기 위해 1981년 미테랑 대통령이 루브르박물관 대개조 계획인 '그랑 루브르(Grand Louvre)'.. 2018. 12. 2.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사원(Westminster Abbey) 영국 대부분의 왕이 대관식을 올렸으며 왕실의 장례식과 결혼식이 열리는 이곳은 영국의 심장과 같은 곳이라고 할 수 있다. '디 애비(The Abbey)’라고도 불리는데, 영국인들은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가장 최고의 수도원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 수도원이 있었던 것은 약 6세기 경이라고 한다. 앵글로색슨 왕조의 참회왕 에드워드는 이 수도원을 노르만 양식의 교회로 다시 지었다. 에드워드는 교회의 제단 뒤에 묻혔는데, 그는 웨스터민스터 사원에 묻힌 최초의 왕이 되었다. 최초의 대관식은 1066년 크리스마스 때 있었던 정복왕 윌리암의 대관식이다. 에드워드 5세와 에드워드 8세를 제외한 모든 군주가 이곳에서 왕관을 썼다. 참회왕 에드워드가 지은 노르만 양식의 교회는 13세기 까지만 존재하였다. 헨리 3세가.. 2018. 12. 2.
[영국] 웨슬리 기념교회 Wesley's Chapel WESLEY'S CHAPEL and LEYSLAN CENTRE 웨슬리 채플 방문을 환영합니다. 1. 존 웨슬리와 채플 (John Wesley and Chapel) 존 웨슬리는 감리교 창시자이며 1703년 6월 17일 영국 링커셔(Lincolnshire)의 웹워스(Epworth)에서 국교회 신부인 사무엘 웨슬리(Samuel Wesley)와 수잔나 웨슬리(Susanna Wesley)사이에서 19남내중의 15번째로 태어났다. 1720년 6월 24일 옥스퍼드 크라이스트 처치 대학에 입학하였고, 1726년 3월 17일 옥스퍼드 링컨 대학의 특별 연구원이 되었다. 이로부터 35년 이상 링컨 대학에서 라틴어, 아랍어, 논리학, 윤리학, 철학, 물리학, 웅변학, 시가문학 등을 연구하였다. 1729년 그의 동생 찰스웨슬.. 2018. 12.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