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1160 중동여행에서의 현지음식 2015. 6. 26. [그리스] 데살로니카 테살로니카(Thessalonica)라고도 한다. BC 315년 마케도니아의 왕 카산도로스가 건설하였고, 그의 왕비인 데살로니카의 이름을 따서 시의 이름을 지었다. BC 146년 이후 로마 시대에는 속령(屬領) 마케도니아의 제일 큰 도시로 번영하였다. 양항(良港)인 동시에 바르다르강과 모라바강에 의해 도나우강과 연결된다. 유럽 내륙의 출구에 해당하며 아드리아해(海)와 비잔틴을 연결하는 에그나티아 가도(街道) 중간에 있는 교통상 중요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번영하였다. 1세기에 사도 바울로가 이곳에 교회를 세웠으며 305년 갈레리우스 황제가 페르시아를 정복한 것을 기리기 위해 개선문을 건설하였는데 오늘날까지도 남아 있다. 동로마 시대에도 콘스탄티노폴리스 다음 가는 도시로 번영하였고, 수많은 교회가 세워졌다... 2015. 6. 26. [그리스] 델피 그리스 델피 신전 2015. 6. 26. [그리스] 루디아교회 그리스 북부 빌립보지역 루디아기념교회 문밖강가 가이드 : 이순자 집사님 뜻 : 생산 루디아 성읍 출신으로 자주 장사를 하던 여자로서 바울이 빌립보에서 전도할 때 믿게된 사람이다(행 16:14). 루디아는 실상 그 출신지를 말하는 것이고 원 이름은 유오디아가 아니면 순두게였다 고 말하는 학자도 있다(빌 4:1). 2015. 6. 26. [그리스] 메테오라 수도원 [Meteora] 아덴에서 336km 북쪽, 데살로니가에서 235km 남쪽, 그리스 중부지방에 위치한 메떼오라는 11세기 그리스 정교 수도원과 은둔자 기도처로 사용되었던 동굴들이 있는 지역입니다. 약 5km 떨어진 깔람바까 마을은 터키어 깔렘박(좋은 망대)에서 유래된 지명입니다. 마을보다 400m 정도 높은 수도원에서 내려다보면 압도적인 느낌을 받는 절경이고, 반대로 마을에서 언덕으로 올라가면서 올려다보는 수도원들도 벅찬 감동을 느끼게 합니다. 시내산 수도원과 모세산 정상으로 이르는 3,000계단과 마찬가지로, 수직에 가까운 언덕에 수도사들이 기도하면서 돌 하나하나를 날라서 건축한 수도원입니다. 교파를 떠나서 하나님 앞에서의 자세를 다시 묵상하게 하는 성지입니다. 메갈로 메떼오라 수도원 순례가 허락되는 6개의 수도원 중 .. 2015. 6. 26. [제주도] 삼도2동 제주 선교 첫 열매 제주성내교회 기장 성내교회 주보 현 교회모습 이기풍 목사의 제주도 선교 초기 중심교회이자 제주 최초의 교회이다. ㅁ1908년 이기풍목사가 세명의 신자들과 함께 향교골에서 기도회 시작 (제주 최초의 교회시작) ㅁ일도리 중인문 안에 초가 여섯간을 매입하여 교회당을 사용. ㅁ구 출신청을 매입하여 성내교회당으로 사용. ㅁ교회 설립계를 제출(제주성내교회) ㅁ구 출신청 앞에 목조 52평의 예배당 기공. ㅁ영흥 야학교 69년제 보통과 설립. ㅁ관인 중앙유치원 개원(제주 최초의 유치원) ㅁ교회 구내에 노회경영 성경학교 교사의 기숙사를 신축 ㅁ교회 부흥으로 제주동부교회를 설립하고 성내교회는 제주서부교회로 개칭. 1953년 성내교회(기장)과 성안교회(예장통합)이 분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 성내교회 예배실 1921-73 교회 모.. 2015. 6. 24. [제주도] 조천읍 이기풍선교기념관 이기풍 목사 제주 선교 기념관 이기풍 선교관은 1만6백여 평의 대지에 연건평 2천여 평의 규모로 동시에 2백50명이 숙식을 할 수 있는 숙소동을 비롯해 4백20석의 대예배실, 50석의 소예배실, 40석과 20석 규모의 회의실을 등을 갖춘 예배동과 식당과 사무실 등을 갖춘 사무동이 자리잡고 있다. 이밖에도 부대시설로서 캠프파이어를 할 수 있는 야외집회장과 등산로 등을 갖추고 있어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도록 시설을 갖추었다. 98년 5월에 개관한 기념관은 제주도의 자연석으로 건축 해발 4백고지에 위치, 수목이 수려한 주변 경관과 잘 어울리는 '자연친화적'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북제주군에서는 우수건축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고 이기풍 목사의 선교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잇는 전시.. 2015. 6. 24. [이탈리아] 베니스 운하 베니스 산마르코광장 베니스 산마르코광장 베니스 리알토다리 베니스 곤도라 2015. 6. 24. [이탈리아] 피렌체 두오모성당 2015. 6. 24. [이탈리아] 피렌체 베키오 다리(Ponte Vecchio) 아르노강 위의 다리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1345년에 건설되었으며 로마시대의 마지막 다리로 알려져 있다. 1944년 연합군의 추격을 받던 독일군이 강 양쪽 기슭의 집을 모두 파괴했으나 베키오 다리만 남겨두었다고 한다. 원래 이 다리에는 푸줏간, 대장간, 가죽 처리장 등이 있었는데 1593년에 페르디난도 1세가 시끄럽고 악취가 난다며 모두 추방하였고 대신 금세공업자들이 다리 위의 상점에 세들었다. 이후로 지금까지 베키오 다리의 금세공 상점들은 다양한 보석을 판매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판매하는 수공예 제품들은 여행자들에게 인기가 높다. 2015. 6. 24. [이탈리아] 피사의 탑 2015. 6. 24. [이탈리아] 카프리섬 2015. 6. 24. [이탈리아] 로마 스페인광장 2015. 6. 24. [이탈리아] 로마 나보나광장 2015. 6. 24. [이탈리아] 로마 천사의 성 2015. 6. 24. [이탈리아] 로마 트레비분수 2015. 6. 24. [이탈리아] 로마 콜롯세움 [Colosseum]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투기장(鬪技場)으로, 직경의 긴 쪽은 188m, 짧은 쪽은 156m, 둘레는 527m의 타원형이고, 외벽(外壁)은 높이 48m의 4층인데, 플라비우스 왕조인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착공하여 80년 그의 아들 티투스 황제 때에 완성하였다. 정식 명칭은 '플라비우스 원형경기장(Amphitheatrum Flavium)'이라고 한다. 플라비우스 왕조 때 세워진 것으로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착공하여 80년 그의 아들 티투스 황제 때에 완성하였다. 본래는 비공식 이름이었던 콜로세움(Colosseum)의 유래에 대해서는 원형 경기장 근처에 있던 네로 황제의 거대한 청동상(Colossus Neronis)과 명칭이 혼동되었다는 설과 '거대하다'는 뜻의 이탈리아어 콜로살레(Colossale)와 어원이 .. 2015. 6. 24. [이탈리아] 나폴리 2015. 6. 24. [프랑스] 프랑스 종교개혁 발자취 위그노들의 순교 개혁신앙을 위해 삶을 바쳐 스러져갔던 그곳에는… 1. 이노성 분수(Fontaine des Innocents) 관광객들이 많이 방문하는 레알 지구에 앙리 2세의 파리 입성을 기념하기 위해 1549년 피에르 레스코(Pierre Lescot)가 설계하고 위그노 건축가인 장 구종(Jean Goujon)이 조각한 이노성 분수가 있다. 이 분수는 원래는 생드니(rue Saint-Denis) 거리에 있던 것을 1786년에 옮겨 놓은 것으로, 르네상스 시대의 마지막 분수대이기도 하다. 지금은 수 많은 젊은이들이 이곳에서 앉아 자신들의 삶을 즐기고 있지만, 원래 이곳은 슬픈 이야기가 있었던 곳이다. 필립프(Philippe de Gastine)라는 위그노의 집이 있었던 곳인데, 위그노 모임을 주선한 죄로 1569년에 그의.. 2015. 6. 4. 에티오피아 기독교문화유산을 찾아가다 (2) 여전히 진한 고대 기독문화유산의 향기 “어서 와요” 에티오피아가 손짓하고 있다 해발 3000m 거대한 바위 뚫고 만든 ‘천사의 창조물’ 11개 암굴교회 ‘웅장’ ‘성스러운 도시’ 악숨엔 스바 여왕 찬연한 흔적·거대한 오벨리스크 곳곳에 북동쪽으로 진로를 돌렸다. 4일째 본격적인 기독교유적 탐방이 시작됐다. 고산도시의 매력을 한껏 선사했던 곤다르를 뒤로하고, 에티오피아의 중세와 고대 수도로 발길을 옮겼다. 에티오피아 기독교성지로 꼽히는 랄리벨라와 악숨이 다음 행선지다. 북으로 향할수록, 시간을 거슬러 올라 적도의 나라가 지닌 옛 영광과 마주한 셈이다. 그곳에서 제2의 예루살렘과 스바여왕의 자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교회를 건너 교회를 넘어 교회로 가다. 비행은 짧았다. 30분 만에 자그왕조의 300년 .. 2014. 12. 19. [에티오피아] 융성했던 기독교문화유산의 저력, 에티오피아가 기지개를 켜고 있다 에티오피아 기독교문화유산을 찾아가다 (1) 에티오피아 역사문화 시간여행 수도 아디스아바바서 국가 지탱해온 기독교 영향력 체감 초기 한국교회 풍경 담긴 바하르다르 예수 수도원 인상적 ‘독실한 신앙’ 곤다르 왕조 찬란한 유산은 영욕의 역사 품어 ‘마라톤의 나라’, 에티오피아 취재를 의뢰받았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는 마라톤이었다. 두 번의 올림픽과 한 번의 장애인올림픽을 석권한 ‘맨발의 아베베’를 위시해 그의 후예들이 마라톤 시상대 맨 윗자리를 독차지하곤 했다. 에티오피아에 대한 또 다른 기억은 기아와 질병이다. 1985년 미국의 명 프로듀서 퀀시 존스는 마이클 잭슨, 스티비 원더, 라이오넬 리치 등 팝스타들을 불러 모은다. 에티오피아 빈민 구호 목적으로 (USA for Africa) 앨범을 제작하기 위.. 2014. 12. 9. [그리스] OCEANIS HOTEL KAVALA 사도바울과 유럽의 멋진 관계는 루칸의 기록과 함께 시작 한다. 그의 결정은 몽상이나 신비로운 경험을 통해 만들어졌다구 한다. < 밤에 그는 몽상을 하게된다. 마케도니아의 한 남자가 서서 그에게 간청했다.'마케도니아로 와서 우리를 도와달라' (행 16:9 말씀) 그러므로, 그는 마케도니아와 그리스와, 나머지 유럽에도 그리스도의 말씀과 진정한 종교를 가르치게 됩니다. 사도바울은 49 AD 해에 고대 네아폴리스 도시에 발을 딛입니다. 그시대에 네아폴리스가 지금의 까발라 입니다. 그 시절 매우 중요한 항구와 무역 센터로 알려진 도시 입니다. 사도바울의 계기로 인해 이 도시는 그리스도의 도시로 언급되었습니다. 세인트 니콜라스 교회는 그의 양륙장소에 지어졌습니다. 까발라 시민들 야드에 지여졌고, 사도바울을 존경(기.. 2014. 10. 14. "Ethiopia 커피보다 깊고 진한 이야기 Axum악숨, Lalibela 랄리벨라" 수백만년 전 유인원 루시Lucy가 직립보행을 시작했으며, 모세가 신으로부터 받은 십계명 돌판이 지금도 보관돼 ‘있다는’ 나라. 전설과 신화, 역사가 뒤엉킨 에티오피아 북부 지역을 여행했다. 흡사 장대한 스케일의 대하소설 속을 유랑하는 것만 같았다. Axum악숨 에티오피아의 처음을 더듬어 보다 와인처럼 깊은 향기가 매혹적인 예가체프Yirgacheffe 커피를 제외하고는 에티오피아에 대해 별다른 호감이 없었다. 가난과 기근, 현대문명을 거부한 채 살아가는 원시 부족들, 고통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들. 이런 장면을 취재하기 위해 수많은 나라를 제쳐두고 굳이 에티오피아를 여행할 이유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에티오피아인들의 문화적, 역사적 자부심을 몰랐을 때의 이야기였다. 고대에는 동.. 2014. 10. 14. 인류의 고향 에티오피아 아프리카 가는 길이 한결 가까워졌다. 대한항공이 케냐 나이로비행 직항을 띄운 데 이어 에티오피아 항공도 지난 6월부터 서울~아디스아바바 직항을 주 4회 운항하고 있다. 아프리카 대륙의 ‘동쪽 뿔’ 근처에 위치한 두 나라까지의 비행 시간이 유럽이나 미국과 비슷해졌다. 덕분에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대륙을 여행하는 한국인도 크게 늘었다. 아프리카 하면 흔히들 세렝게티 초원 ‘동물의 왕국’을 떠올리지만, 그 밖에도 볼거리, 즐길거리가 다채롭게 펼쳐져 있다. 에티오피아가 그중 하나다. 시바 여왕의 3000년 왕국으로, 아프리카의 유일한 기독교(에티오피아 정교) 국가인 에티오피아는 여러 고대 유적지를 간직하고 있다. 커피의 고향인 이곳에서 경험하는 커피 세리머니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아디스아바바 주민들 외모와 기.. 2014. 10. 14. [중앙일보] 유럽 종교개혁 500년, 그 현장을 가다. 1. 개혁의 밀알 - 체코의 후스 “면죄부 파는 교황은 유다” 후스 외침, 암흑을 깨다. 독일 정부에서 5년 전에 설문조사를 했다. “세계사의 흐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독일인은 누구인가”를 물었다. 1위에 오른 인물은 괴테도, 베토벤도, 헤겔도, 히틀러도 아니었다. 마르틴 루터(1483~1546)였다. 중세 때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주인공이다. 2017년 ‘루터의 종교개혁’이 500주년을 맞는다. ‘개신교’가 등장한 지 반(半) 1000년이 된다. 3~10일 500년 전의 종교개혁지를 순례했다. 그들이 전하는 개혁의 메시지는 지금도 유효했다. 요즘 한국 교회를 향한 외침이기도 했다. 3회 시리즈를 싣는다. 3일 체코의 프라하로 갔다. 1968년 민주화 시위 ‘프라하의 봄’으로 유명한 도시다. 종교개혁사.. 2014. 9. 16. [독일] 에르푸르트 에르푸르트(Erfurt)도 1260여년의 긴 역사를 가진 아름다운 도시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이다. 처음으로 에르푸르트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742년 사도인 보니파티우스(Bonifatius)가 교황청의 명을 받고 선교여행을 하다가 이 곳의 빼어난 경관을 보고 교황청에 편지를 올리면서 부터이다. 그 당시 에르푸르트는 에르페스푸르트라 불리웠는데 보니파티우스사도가 이 곳을 주교구로 추천하였다. 이로부터 에르푸르트는 튀링겐지역의 종교적인 중심지가 되었으며 독일의 중심부에 위치하는 지역특성상 당시 독일지역의 교통로와 유럽상업로의 요충지로 발전하였고 현재는 튀링겐주의 수도로 통독 이후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에르푸르트는 면적면으로도 넓고, 중세적인 모습을 가장 잘 간직한 독일의 도시들 중 하나라는 .. 2014. 9. 16. [한국경제] 한국교회, 루터에게 길을 묻다 (上) 종교개혁 500년 현장 가보니 '오직 믿음' 실천한 루터정신, 獨 비텐베르크 곳곳에 오롯이 교권 다투는 우리교회 '반면교사' "1524년부터 개신교회로 유지되고 있는 이곳은 종교개혁의 정신적 문화재입니다. 신앙과 믿음의 개혁이 시작된 곳이죠." 독일 동북부 작센안할트주의 소도시 비텐베르크 성곽교회.지난 5일 10여명의 순례자들에게 교회 곳곳을 보여주며 설명하던 베른하르트 그룰(75)은 이렇게 말했다. 2000년까지 이 교회 안내원으로 일하다 은퇴한 그는 "내가 은퇴할 때까지만 해도 매년 2000여명이 이곳을 찾았는데 요즘에는 1년에 20만명 이상 온다"고 덧붙였다. ◆종교개혁의 발원지, 비텐베르크 인구 2만여명의 작은 도시 비텐베르크에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은 이곳이 오늘날의 개신교회를.. 2014. 9. 16. [한겨레신문] 유럽 종교개혁 성지를 찾아. 모든 것을 하나님께 돌린 ‘죄’ 500년 증거 루터가 심은 생명의 사과나무 돈 받고 파는 교권의 면죄부 맞서 ‘예수뜻 회복’ 화형으로도 태우지 못한 ‘성서 진리’ 깊은 뿌리 마르틴 루터(1483~1546)의 종교개혁 500돌(2017년)이 6년 앞으로 다가오면서 ‘교권’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로 돌아가고자 했던 ‘종교개혁’의 의미를 기리려는 한국교회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한국교회의 얼굴로 꼽히는 대형교회들로부터 쉴 새 없이 터져나오는 비리와 싸움, 개신교 최대 연합기관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의 ‘돈선거’ 등으로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된다’는 목소리들이 거세지며 ‘종교개혁 정신’은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때마침 얀 후스, 마르틴 루터, 장 칼뱅, 츠빙글리 등 개혁가들의 흔적을 찾아나선 경기도 용인 죽전 새에덴교회(.. 2014. 9. 16. [독일] 비텐베르그 비텐베르그(Lutherstadt Wittenberg)는 Sachen-Anhalt 주의 엘베(Elbe)강가 동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Unesco가 1996년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도시이다. 비텐베르그는 특히 마틴루터의 종교개혁운동의 진원지로 잘 알려져 있으며 이로 인해 16세기 유럽의 종교적, 문화적 요충지가 되었다. 마틴루터 이외에도 멜랑흐톤(Phillipp Melanchthon), 부겐하겐(Johannes Bugenhagen), 요나스(Justus Jonas), 독일 르네상스의 유명한 화가 크라나흐(Cranach)등이 활동하던 도시이기도 하다. 마틴루터의 집은 1504~1507에 원래 아우구스티너수도승들을 위해 지어졌는데 마틴루터가 1508년부터 이 곳에 살며 일했으며 부인 카타리나와 1525년에.. 2014. 9. 16. [독일] 꺼지지 않는 등불 ... 루터의 가르침과 개혁정신 교회의 사명이 무엇인지에 대해 논의할 때 예배 선교 봉사와 함께 중요하게 손꼽히는 것이 교회교육이다. 오늘날 교회의 교육적 사명은 누구나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교회 역사를 살펴보면 언제나 그랬던 것이 아니다.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교회교육의 새로운 장을 연 것은 마르틴 루터가 이룩한 또 하나의 공헌이었다. 1520년대말 루터는 그가 살던 작센주의 여러 교회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교회 순방을 하는 동안 루터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그것은 교회에 열심히 출석하는 사람들조차도 성경이나 기독교 신앙에 대해서 매우 무지하다는 것이었다. 십계명이나 사도신경을 모르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주기도문도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모든 크리스천이 성직자들과 동등하다는 ‘만인제사장’을 주장했던 루터.. 2014. 9. 16. 이전 1 ··· 15 16 17 18 19 20 21 ··· 3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