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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32

[요르단] 소돔과 롯이 피한 소알 그전부터 알고 지내던 현지인의 도움으로 승용차를 이용해 요르단의 사해 남단에 있는 소돔과 소알을 찾았다. 소돔의 위치에 대해서는 대체로 두 곳이 주장되고 있다. 하나는 이스라엘의 마사다에서 남쪽으로 15㎞ 정도 내려가면 엔 보케그(Ein Boqeg)가 나오고 그 남쪽에는 소금으로 이루어진 소돔산이 나오는데 이곳이 소돔이라는 설과 또 다른 곳은 사해 동쪽 리산반도 바로 남쪽 지역이라는 설이 있다. 최근에는 사해 북쪽의 바다 밑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오늘날까지도 위치에 대한 약간의 논쟁이 있지만 아직까지는 사해 동쪽에 있는 요르단쪽의 현재 바브 아드 드라(Bab adh Dhra)가 가장 유력하다. 그곳에 가기 위해 암만에서 요단 계곡을 향해 50㎞쯤 내려가면 성경에 언급되는 벧니므라(민 32:36)가 나오.. 2013. 7. 11.
[요르단] 움 카이스 움 카이스 신약 시대에 요르단 북부는 로마 데가볼리 (그리스어로 10개의 도시를 의미) 지역이었다. 오늘날 1개 도시를 제외한 데가볼리의 전 도시가 요단강 골짜기 동편의 요르단 북부 또는 시리아 남부에 소재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곳에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가르치고 기적을 행하였다. 데가볼리의 구도시인 가다라(현재의 움 카이스)는 갈릴리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웅장한 전경을 갖춘 곳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거라사의 돼지 떼 속으로 귀신을 쫓은 기적을 행한 장소이다. 이곳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도시 입구 근처에서 무덤 사이에 거하는 귀신 들린 자를 만나자 그에게서 귀신들을 쫓아내 돼지 떼 속으로 들어가게 했다. 돼지 떼는 비탈길을 내리 달려 갈릴리 바다 물속으로 들어가 몰사했다. 보기 드물게 5개의.. 2013. 6. 25.
[요르단] 브니엘(펠라)과 숙곳 야곱은 이삭과 리브가 사이에서 형 에서와 함께 쌍둥이로 태어났다. 그러나 아버지를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빼앗은 일로 인해 형을 피해 도망쳐 하란에서 20년을 지낸 후 많은 가족과 재물을 소유하여 귀향하게 된다. 그러나 그의 귀향 여정은 그의 생애만큼이나 평탄하지 못했다. 그중에서 천사와 씨름한 브니엘(Penuel)과 우릿간을 지은 숙곳(Succoth)을 찾기 위해 오늘날 요르단의 수도인 암만에서 택시로 아침 일찍 출발했다. 단체가 아닌 개인으로 요르단 지역에 있는 성서 도시들을 찾기 위해서는 대중교통과 차를 빌리는 것보다는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비용면이나 시간 절약면에서 좋다. 브니엘은 요단강 동쪽 얍복강 중류에 위치한 성읍이다. 이곳은 브누엘로 표기되기도 한다. 나는 이곳이 오늘날 제르카 강(성경의 얍.. 2013. 6. 25.
[요르단] 디셉과 아벨므흘라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열된 후 가장 유명한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인 엘리야와 그 후계자 엘리사의 고향을 답사하기로 하고 암만을 출발해 성서에 나오는 ‘왕의 대로’를 따라 북쪽으로 향했다. 성경에 나오는 왕의 대로는 오늘날 요르단의 35번 도로 중 수도인 암만 북쪽으로는 가장 중심된 도로로 암만 남쪽으로는 사막으로 난 15번 도로 다음으로 중심을 이루는 도로다. 암만을 출발해 50km를 달리면 요르단에서 가장 큰 유적이 남아있는 제라쉬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다시 20번 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가다 안자라(Anjara)에서 북서쪽으로 올라가면 그릿 시냇가에 도착하게 되는데, 바로 시냇가 위 언덕에 엘리사의 고향인 아벨므홀라가 보인다. 그릿 시냇가는 북이스라엘의 아합왕 때 가뭄이 들어 엘리야가 잠시 머문 곳으로.. 2013. 6. 25.
[요르단] 마케루스 1세기의 로마-유대 역사가인 요세푸스는 외경심을 불러일으키는 장소인 마케루스(오늘날의 무카비르)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중에 로마에 의하여 임명된 지역 통치자 헤롯 안디바의 왕궁/성이라고 밝힌 바 있다. 사해 지역과 팔레스타인/이스라엘의 먼 산들이 내려다보이는 이 곳의 요새화된 왕궁에서 헤롯은 세례 요한을 옥에 가두고 그의 목을 베었다. 즉 "살로메가 춤을 춘 후, 세례요한이 목 베임을 당한" 것이다. (마태복음 14:3~11). 마케루스는 사해 맞은편의 자매 도시 마사다와 마찬가지로, 로마에 항거하는 제1차 유대인 반란 중에 로마의 포위 대상이 되었다. 마다바에서 차량을 이용하여 이 곳에 쉽게 찾아갈 수 있다. 무카비르는 2000년도 지정 순례지 중 하나이기도 하다. 무카비르 산 정상에서 특히 일몰 시.. 2013. 6. 25.
[이스라엘] KFAR HANOKDIM 베드윈텐트 http://kfarhanokdim.co.il/english/about.htm 크파르하녹딤 베드윈텐트 체험 12개 국가에 거주하는 28개 베두윈족의 통합 프로파일 "베두윈"이란 이름은 "베두"(bedu)라는 아랍 단어에서 유래했다. 이것은 양떼를 몰고 이주하는 무리와 도시나 농촌지역에서 정착한 사람들을 구별하기 위해 사용되는 말이다. 그렇게 구분이 되긴 하지만, 두 공동체는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서로에게 의존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낙타를 타고 사막을 떠돌며 길게 늘어진 옷을 입고 있는 유목민으로서 베두윈족을 묘사한다. 하지만, 사실 그들의 참모습은 훨씬 더 복잡하다. 오늘날, 많은 베두윈족은 반 유목민으로 살며, 가축떼를 몰고 이동하기도 하고 일정 형태의 정착농업에 종사하기도 한다... 2012. 6. 28.
[터키] 우치히사르 바위집과 버섯바위터키 [ Uçhisar ] 우치사르 바위집과 버섯바위 데브렌트 계곡이 인위가 없는 순도 100% 자연의 작품이라면 우치사르는 오히려 자연보다 사람의 냄새가 짙은 곳이다. 카파도키아 지역의 주도인 네브쉐히르에서 동쪽으로 약 10km 떨어진 이 마을은 우치사르성(城)이라고 불릴 정도로 산세가 드높은데다 한눈에도 가옥수가 엄청난 것을 볼 수 있다. 네브쉐히르에서 아바노스로 가는 길에 만난 우치사르성은 괴레메 지역에서는 가장 높은 곳이다. 카파도키아에서 ‘요정의 굴뚝’이라 불리는 솟은 바위들과 성을 둘러싼 바위집들의 묘한 조화가 두 도시를 가로지르는 관광객들의 자동차 행렬을 잠시 멈추게 한다. 화산 분출로 형성된 응회암 지대인 우치사르는 오늘날 오랜 동안 계속된 비바람의 침식에 의해 원뿔형태를 하고 있고 수많은 자연 동굴을 가지고 있다... 2010. 8. 29.
[터키] 이스탄불 히포드롬 로마 시대의 히포드롬에는 원형 경기장의 흔적은 사라지고, 이집트의 카르나크 신전에서 실어 온 오벨리스크와 델피 신전에 서 있던 뱀기둥,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의 기념비만이 가진 자들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광장을 채우고 있다. 히포드럼의 기념탑들 히포드럼(Hippodrome)은 10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당시의 전차경주장으로 각종 정치 분쟁과 폭동이 주된 배경장소였다. 지금 이 광장에는 이집트의 룩소 카르낙 신전에서 가져온 화강암 오벨리스크(The Egyptian Obelisque), 페르시아군대의 무기로 만들었다는 뱀머리 기둥(The Serpentine Column), 콘스탄티노플 황제의 기념탑(The Constatine Obelisque)만이 남아 있다. 2010. 8.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