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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알레치 - 가장 큰 알프스 빙하 지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장대하고 아름다운 대 알레취 빙하에서 알프스의 가장 아름다운 빙하를 감상해보자. 다양한 하이킹 코스, 각종 겨울 스포츠와 특별한 자연 체험 투어 등을 즐길 수 있는 가장 대중적이며 접근 용이한 곳이다. 알레취 빙하지역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지역의 일부이다. 단순히 '거대한 알레취 빙하' 라는 명성 때문만이 아니라 실제로 110억 톤에 이르는 얼음으로 이루어진 알프스에서 가장 큰 빙하이다. 전체 지역은 많은 드문 동식물의 서식지인데, 알레취 숲이 가장 대표적인 장소이다. 준-자연 보호지가 숲의 근방에 위치해 있다. 빙하를 잘 감상할 수 있는 지역들이 수도 없이 많은데, 그중 하나가 베트머알프를 굽어볼 수 있는 베트머호른(Bettmerhorn)이다. 에기스호른(Eggishor.. 2020. 1. 10.
[스위스] 라인 폭포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이 폭포는 포효하는 듯하며 폭포 전체가 떨리는 듯한 느낌을 그대로 전달해 주는데, 이 폭포는 바로 샤프하우젠(Schaffhausen) 근처에 자리한 라인 폭포(Rhine Falls)로 이 느낌을 체험할 수 있다. 배에 탑승하여 성과 라인 폭포의 움푹한 곳까지 이동할 수 있으며 심지어 폭포의 중앙에 자리한 거대한 바위에도 가볼 수 있다. 빙하 시대 지질 구조학적 변형으로, 라인 강은 15,000여 년 전에 새로운 강바닥으로 흐르게 되었다. 라인 폭포는 단단한 석회암에서 무른 자갈로 변하는 전환 지점에 생성되기 시작했다. 150m가 넘는 폭, 초당 23m의 속도로 깊이 떨어지는 수백 입방미터의 폭포수. 수천 년 동안 비바람을 견디고 있는 거대한 바위는 폭포수의 한 가운데 우.. 2020. 1. 10.
[스위스] 체르마트 마테호른 - 스위스의 상징 마테호른과 스위스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등반하기 까다로운 피라미드 모양의 산 꼭대기는 아마도 사진으로 가장 많이 찍힌 봉우리일 것이다. ''작은 마테호른'이라는 뜻의 클라인-마테호른(Klein-Matterhorn)은 퓨니큘라를 타고 오를 수 있으며, 마테호른과 근접한 곳에 있다. 산악인들은 1865년에 처음으로 마테호른 등반에 성공했으나, 7명이 산악인 중 4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그 뒤로 마테호른은 이 지역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후로 마테호른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하고 산악인들이 등반을 꿈꾸는 산이 되었다. 오늘날에도 마테호른을 등반하는 것은 큰 도전과제이며, 뛰어난 장비와 훌륭한 가이드를 둔 전문 산악인들만이 등반의 꿈을 실현할 수 있다. 포토재닉한 마테호른을 감상할 수 있는 최적의 .. 2020. 1. 10.
[이스라엘] 나사렛 요셉 교회 = 성가정교회 이스라엘 나자렛 요셉의 동굴 나사렛의 수태고지 교회와 함께 순례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장소가 있다. 수태고지 교회의 2층 북문으 로 나가서 약 150m 북쪽에 있는 요셉교회이다. 이 교회는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바로 직전인 1914년 벤델린 힌터쿠서 신부에 의해서 건축되었다. 이 교회는 십자군 시대의 교회 터위에 그대로 재건되었다. 벤델린 신부는 새로운 교회가 옛날의 교회와 동일 한 형태로 지어지기를 원했다. 그래서 발견되어진 세 개의 반원형 제단을 그대로 활용하여 그 곳을 기초석으로 이용하였다. 그리 하여 바로 위에다 옛 모습을 따라 현재의 교회가 세워진 것이다. 중앙 제단의 벽화는 1952년 델라토르에 의해서 그려졌다. 중앙에 성가정의 모습, 오른쪽에는 요셉의 현몽, 그리고 왼쪽에는 요셉의 임종 .. 2019. 10. 19.
[이스라엘] 갈멜산 무흐라카 엘리야기념교회 (Garmel) 이스라엘 갈멜산 무크라카 엘리야 기념교회 뜻 : 나무가 많다 "머리는 갈멜 같고" (아 7:5), "해변의 갈멜같이" (렘 46:18, 사 33:9), 아름다움을 노래할 때마다 등장하는 해발 482 m의 이 산은 이스라엘의 '거룩한 머리산' (Holy Headland)이라 불리었다. BC 4 세기의 헬라인들은 이 산을 '거룩한 제우스의 산'이라 불렀으며, AD 1 세기 로마의 베스파시안 장군은 이곳에서 제사를 드리기도 하하였다.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 (Tacitus)는 이 산을 가리켜 "동상도 신전도 없이 오직 제단과 예배만 있는 산이 있는 곳" 이라 하였다. 갈멜산은 이스라엘의 3대 도시 가운데 하나인 하이파 (Haifa) 시가 위치하고 있는 지중해 하이파만으로부터 시작되어 이즈르엘 골짜기를 따라 남.. 2019. 10. 19.
[이스라엘] 가이사랴 빌립보 = 바니야스 신전 이스라엘 가이샤라빌립보 (바니야스) 텔 단에서 약 4Km를 골란 고원 안쪽으로 들어가면 헬몬산 남쪽 경사면 암벽 틈에서 수정같이 맑고 깨끗한 물이 솟구치는 곳이 있다. 이 물줄기는 단에서 흘러나오는 물과 함께 요단강의 중요한 수원이 되고 있다. 바니야스에는 가나안 시대부터 바알신을 섬기는 신전이 있어왔다. 헬레니즘 시대에는 판신(Pan God)을 섬겼기에 파니야스라고 불렀다. 오늘날 바니야스는 파니야스에서 유래된 것으로 파의 “P”발음을 못하는 아랍인들이 B로 잘못 발음하여 바니야스로 굳어지게 된 것이다. 현재도 연못 뒤쪽의 절벽에는 많은 동굴이 있고 동굴 안에 신전터를 볼수있다. 주전 200년에 시리아의 셀류시드 왕조는 이집트의 프톨레미 왕조를 패배시킴으로서 이 지역을 포함한 팔레스틴 전역을 장악하였다.. 2019. 10. 19.
[이스라엘] 가이사랴 로마 총독부 가이사랴는 헤롯 대왕에 의해 BC 22 ~ 10년에 세워진 지중해 해변의 항구 도시이다. 헤롯의 건축물은 아직까지도 잘 보존될 만큼 웅장하고 화려하다. 항구와 수로, 원형경기장 및 도로, 대리석으로 꾸며진 화려한 신전과 궁전 등은 당시의 모습과 건축 기술을 추측할 수 있게 한다. 그가 남긴 극장은 아직 이스라엘 사람들에 의해 공연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본래 이곳은 BC 3세기 헬라인들에 의해 항구로 사용되었으며, 페니키아와 이집트를 잇는 Straton's Tower 라 칭하는 항구였다. BC 96년 헤스모니안 왕조의 알렉산더 야나이 (Alexander Jannaeus)가 정복하여 유대 마을을 일으켰으나 헤롯의 수중에 들어가면서 로마식 도시로 변모하였다. 헤롯 대왕은 이곳에 도시를 건설하고 'Casarea.. 2019. 10. 19.
[터키] 사데교회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계 3:1). 두아디라시에서 남동쪽으로 약 65㎞ 떨어져 있는 고대도시 사데.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곳의 로마식 대규모 목욕탕, 체육관, 유대교 회당, 비잔틴 시대에 건축된 교회 흔적을 보면서 당대 최고의 물질적 풍요를 누렸던 도시였음을 알 수 있었지만 마음엔 여전히 흙바람이 불었다. 거대한 두 개의 기둥만 남은 아르테미스신전. 한때 이 도시에 만연했던 우상숭배와 물질적 풍요, 그리고 처음은 뜨거웠으나 차갑게 식어버린 사데 교회 이야기를 알고 있다는 듯 고대 도시를 거만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데 교회는 소아시아 7개 교회 중 유일하게 책망만.. 2019. 10. 19.
[터키] 빌라델비아교회 터키인들이 거주하고 있는 아나톨리아 반도는 역사적으로 메소포타미아,수메르 ,히타이트,고대 그리스,비잔틴 등의 문명과 기독교, 이슬람이란 두개의 문화가 교차하고 대립하던 지역이다. 따라서 고대도시에는 다양한 시대의 문화가 남아 있다. 하루 다섯 차례 정해진 시간에 어김없이 ‘아잔’(이슬람 기도시간을 알리는 소리)이 울려 퍼지는 이슬람국가 터키에서 기독교 유적지를 만나는 순간은 고대와 현대 시간이 중첩되는 듯했다. 현재 ‘알라셰히르’로 불리는 고대도시 빌라델비아에는 성벽과 아크로폴리스 극장, 신전 등의 흔적이 있지만 오랜 세월의 풍상과 도시개발로 고대도시의 원형은 찾기 어렵다. 마을 한가운데 AD 6세기에 건축된 빌라델비아 ‘요한 교회’가 황폐한 상태로 남아 있다. 약 15m 높이의 육중한 돌 기둥이 당시 .. 2019. 10. 19.
[터키] 기쁨의 땅 밀레도 밀레도(Miletus) 방문은 갑자기 이루어졌다. 성지순례 단체와 에베소 순례를 마치자 해질 때까지 4시간 정도가 남아 있었다. 나는 그 시간을 이용해 에베소의 숙소를 알아놓은 뒤 택시를 타고 에베소에서 남쪽으로 65㎞ 정도 떨어진 밀레도를 찾기로 했다. 바울은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던 중 오순절 전에 예루살렘으로 가기 위해 앗소에서 배를 타고 미둘레네와 기오와 사모섬을 지나 에베소를 들리지 않고 곧바로 밀레도에 도착했다. 그러나 바울은 유대인의 간계와 시험 속에서도 눈물과 겸손으로 가르치고 섬겼던 에베소를 잊지 못해 사람을 보내 에베소의 장로들을 밀레도에 청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자기가 떠난 후 흉악한 이리가 들어와 교회를 해칠까 염려스러우니 잘 관리하라고 부탁했다. 에베소 장로들은 다시는 바울.. 2019. 10. 19.
[터키] 라오디게아교회 성경 속의 현장을 눈으로 직접 볼 때 '영혼의 지문'은 더욱 선명해진다. 마지막 순례지였던 라오디게아 교회는 소아시아 7개 교회 중 가장 많은 책망을 받은 교회다.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계3:16)는 주님의 책망을 받았던 교회였다. 고대도시 라오디게아 유적지에는 아치형 건물의 잔해와 비잔틴 시대의 교회 터, 2개의 극장 등의 흔적을 돌아볼 수 있다. 라오디게아에 복음을 전한 이는 사도 바울의 선교 동역자인 에바브라였다. 성서 고고학자 김성(협성대) 교수는 "주님은 물질의 부요함과 의학기술이 뛰어나 교만에 빠진 라오디게아 교인들의 교만함을 꾸짖으셨다"며 "이들의 물질적 부요함과 세속적 자부심은 결국 영적 궁핍함의 원인이 됐다"고 말했다.. 2019. 10. 19.
[프랑스] 칼뱅의 고향 누아용 [Noyon] 장 칼뱅은 1509년 7월10일 프랑스 느와용에서 법률가였던 제랄 코반(Gerard Cauvin)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본래 이름은 장 코반(Jean Cauvin). 라틴어로는 요하네스 칼비누스(Johannes Calvinus)로 쓰고 장 칼뱅(Jean Calvin)은 프랑스어 이름이다. 영어권에서는 존 칼빈(John Calvin)으로 부른다. 칼뱅은 20대 초반에 프로테스탄트로 회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최종 학위는 1531년 오를레앙 대학에서 받은 법학박사이다. 학위를 마친 후의 그의 생애는 네 부분으로 나뉜다. 1533년에서 1536년까지는 프랑스 앙굴렘과 스위스 바젤을 전전하며 신학을 연구한 기간이었다. 이때 쓴 책들이 1534년의 ‘영혼의 깨어 있음에 관하여(Psychopannychi.. 2019. 10.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