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성지56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본오3동 샘골교회 최용신기념관 샘골감리교회, 2007년으로 100주년을 맞이하였다. 샘골교회와 최용신 선생 관련 연혁 1907.07. 03 샘골교회 창립(당시 사리교회). 홍원삼, 홍순호 형제가 양노리 교회(현 비봉교회)에서 예배 를 드리다가 사리(샘골) 한 가정집 마루에서 처음으로 예배를 드림 1929 순회 목회자 김홍제(1929~32년)-안산 구역(처음으로 샘골교회 주재) 밀러 선교사에 의한 순회강습회가 운영, 장명덕 전도사 부임으로 샘골학원이 처음으로 운영됨 엡? 청년회 금주단연운동 벌임 1931.10. 11 최용신 선생 농촌 계몽사로 샘골 부임(김활란,황에스더,쿨란 박사등과 함께 옴). 밀러 선교사가 기증한 전재풍 목사의 사택 건너방(현 태영 아파트 205동 위치)에 임시 거주하다가 샘골교회 뒤 4칸 초가로 이사, 장명덕 전도.. 2009. 9. 1. 전북 군산 내초동 아펜젤러순교기념교회 아펜젤러 순교 기념교회 (군산시 내초동) 여명기 조선땅에 들어와 신식학교(배재학교 이화학당)를 세우고, 교회(정동교회)를 지어 어린 양들을 돌보다 해상사고로 지난 1902년 고군산열도 어청도에서 희생된 아펜젤러 선교사를 기리는 추모비나 예배처소는 그동안 인근 어디에도 없었다. 아펜젤러 선교사를 파견한 감리교는 헤이그 밀사사건을 일으킨 이준 열사를 포함한 수많은 민족지사를 배출한 교단으로 일제 치하 민족운동에도 적지않은 힘을 실어주었는 데도 우리는 무심하였다. 은혜를 모른척하면 인간의 도리가 아니라고 했던가? 그러나 이제 최소한의 예의는 갖추게 되었다. 아펜젤러 선교사 순교 105주년을 맞이하여, 전북 군산시 내초동에 아펜젤러 선교사 순교 기념교회를 세웠다. 2006년5월 기공예배 모습 (출처- 기독교타입.. 2009. 8. 28. 전북 전주 서문교회 선교사묘역 예수병원 신흥학교 전주서문교회 1897년 호남 최초로 미국 남장로교에서 세운교회이다. 1997년 창립 100주년을 맞아 기념관을 건축하였다. 2007년 현재 창립 114주년을 맞아 기념예배와 행사를 가졌다. 전주서문교회는 1893년 정해원 씨가 은송리에 초가1동 예배당을 마련하여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였다. 1897년 7월 처음으로 5명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이로써 ‘전주 교회(교회 명칭)’가 한국인 세례 교인이 있는 교회로 정식으로 성립되었다. 또한 8월 1일 주일에는 전주 교회에서 처음으로 성찬 예식을 레이널즈 목사의 집례로 거행했다. 2007년 현재 114주년을 맞는 서문교회는 2000여명이 출석하는 교회이며 해외 후원 선교사 22명, 후원 미자립교회 17개, 기관 후원단체 22개, 일반 후원단체 12개 등 전도와 구.. 2009. 8. 28. 광주 양림동 오웬기념각 오웬기념각 광주기독병원 기독간호대학 안에 있는 오웬기념각은 유진 벨 선교사와 함께 전라남도 최초 선교사였던 클레먼트 C.오웬(한국명 오기원)과 그의 할아버지 윌리엄을 기념하기 위해 1914년에 세운 2층 건물이다. 회색 벽돌로 지은 이 건물은 객석에서 설교단을 내려다 볼 수 있도록 1층 바닥과 2층 발코니를 모서리의 설교단을 향해 경사지게 만든 것이 특징이다. 이 건물은 주로 교회로 사용되었으며, 당시 크고 작은 문화행사가 열려 문화운동을 파급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현재는 광주광역시유형문화재 제26호로 지정되어 있다. 오웬기념각은 광주양림교회(통합) 옆에 위치해있다. 오웬기념각 오웬 선교사(목사, 의사) 기독간호대학 정원안에 위치한 오웬각, 뒤편으로 광주양림교회(통합)이 보인다. 기독간호대학 정.. 2009. 8. 28. 광주 양림동 우월순 선교사 생가 (호남신학교 도서관옆) 우월순(우일선) 선교사 생가 1946년 1월 한국에 도착한 우월순(R.M.wilson.1908∼1926) 선교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의술로 전한 인물이다. 광주기독병원 2대 원장이었던 그는 1925년 나환자 치료를 위한 전문 진료소를 만들었고 이를 계기로 애양원이 탄생하게 됐다. 광주 호남신학대학교 내에 있는 건물은 우월순 선교사가 광주에 거할 당시 사용한 사택으로 광주에 있는 현존 양식 주택으로는 가장 오래된 건물로 알려져 있다. 이 건물은 1989년 기념물로 지정돼 광주광역시에서 관리하고 있다. 이 건물의 평면은 정사격형으로 1층에는 거실, 가족실, 다용도실, 부엌, 욕실이 있고 2층에는 침실을 두었으며 지하에는 창고와 보일러실이 있다. 우월순(우일선) 선교사 생가 우월순(우일선) 선교사 생가 .. 2009. 8. 28. 광주 양림동 양림교회 광주 양림교회 기장(우), 통합(중앙), 개혁(좌) 전경, 호남신학교에서 내려 본 교회와 양림동 모습 1904년 창립된 광주 장로교의 모교회 양림교회는 3교회(기장, 통합, 개혁)로 나누어졌다. 최초의 교회는 현 기장 양림교회이며 1953년 6월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분열로 통합측 양림교회가 분열되었다. 그리고 양림교회(통합)에서 양림교회(개혁)이 분열 되었다. 흥미롭게도 3교회 모두 교회 창립일을 1904.12.25로 기록하고 있다. 은혜롭게도 창립 100주년 창립 기념행사로 "양림교회 100년사(1904-1953, 양림교회 역사편찬위원회, 2003.11.)" 를 합동으로 발행하였고 1953년 이후 역사는 각 교회별로 "양림교회 100년사"를 발간했다. 광주 양림교회 통합(우), 개혁(좌) 전경 광주지.. 2009. 8. 28. 광주 양림동 23인 선교사 묘지 양림동 선교사 묘지는 광주에 최초로 기독교를 전파하고 개화의 새 물결과 일제 치하에서 구국 운동의 계기를 마련했던 23인의 선교사가 묻혀 있는 곳이다. 위치 : 호남신학대학 내 2009. 8. 25. 광주 선교기념비(宣敎記念碑)| 선교기념비(宣敎記念碑) 양림동 선교기념비는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 배유지 목사가 광주에서는 처음 예배 드린 곳을 기념하기 위한 비로, 1982년 12월 6일 대한예수교 장로회 전남노회가 세운것으로 자연석 화강암제에 음각으로 되어 있으며, 크기는 175cm, 폭이 85cm, 두께 50cm 로 되 어있고 화강기단 위에 세워져 있다. 음기 내용은 국문과 영문으로 되어 있다. * 국문 이곳은 하나님의 보내심 받아 1904년 12월 25일 미국 남장로 교 선교사 배유지 목사가 광주에서는 처음 예배 드린 곳으로, 그 거룩한 뜻을 길이 기리어 여기 돌비 하나를 세우니라. * 영문 At this site on December 25, 1904. American Southern Presbyterian missionary e.. 2009. 8. 25. 전남 영암군 영암읍 교회 영암읍교회 6*25 당시 빨치산들은 인민군 치하에서‘바닥빨갱이’로 불리며 양민학살을 주도했고, 북한 인민군 퇴각 이후에는 지리산을 거점으로 우익인사 살해 등을 벌여왔다. 빨치산들이 6*25당시 인민재판을 통해 학살한 양민의 수는 13만. 남경대학살, Warsaw Getto의 유태인학살과 함께 20세기 세계적 학살사건 중 하나로 기록된다. 붉은 완장을 차고 다니던 바닥빨갱이들은 대개 총이 없었으므로 죽창이나 도끼, 쇠스랑, 괭이 곤봉 등으로 무장했고 곡괭이와 삽으로 우익인사들을 찔러 죽이는 원시적 학살행위를 자행했다. 전쟁사학자들은 6*25 당시 공산주의자들에 의한‘13만 양민학살’이 세계적 학살로 기록되는 이유는 피해자 수는 물론 그 잔혹성에 있다고 지적한다. 경남 남해군에서는 경찰관들을 살해해 배를 갈.. 2009. 8. 24. 전남 영암군 학산면 상월교회 상월 그리스도교회 1947년 7월 1일 창립자 진 성구씨께서 상월 본 부락에 거주하면서 자기 소유 주택 상월 139의 3번지의 건물을 임시교회 예배처소로 제공하면서 전도에 열심하여 초신자들을 모아 예배를 드리므로 교회가 시작되었다. 이 때에 신덕철 전도사님이 부임하시어 초대 교역자로서 모시게 되었다. 당시 김은석 목사님을 비롯하여 최요한 목사님, 김재순 목사님의 종횡 무진한 협조로 본 교회 창립 초에 중대한 신앙적으로 도움을 주셨으며 김은석 목사님은 말씀중심으로 최요한 목사님은 성령운동으로 김재순 목사님은 겸손과 미덕으로 각각 전도와 포교에 열중하여 오늘의 상월교회가 있게 하여 주었고 특히 최요한 목사님께서는 그리스도의 교회로 환원시키시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셨다. 이렇게 하여 초창기 교회는 성령과 열심으.. 2009. 8. 24. 전남 영암 순교자 기념관 영암 순교자기념관 “예수 믿지 않는다고 한마디만 하면 살려 준다”(공산군). “그럴 순 없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믿고 사랑합니다.”(순교자). 최의순(73·영암신복교회)권사의 어머니인 김정님(당시 영암구림교회)집사는 죽음 앞에서 결코 나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예수 믿으면 천국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 집사는 순교지로 묵묵히 걸어 갔다. 1950년 10월,주막집으로 이용되던 순교현장에는 김 집사 외에도 많은 우익 인물들이 끌려와 있었다. 공산군들은 이들을 모두 주막집에 가두었다. 그렇게 그들은 두려움 속에서 하루 밤을 지내야만 했다. 공산군들은 “예수를 믿지 않는다고 한 마디만 하면 살려 준다”고 거듭 유혹했다. 그러나 성도들은 굴복하지 않았다. ‘불신앙’ 대신,순교를 선택.. 2009. 8. 24. 전남 신안군 증도면 문준경 전도사 순교지 문준경 전도사 순교지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복음화율을 자랑하는 그곳은 바로 전라남도 신안군이다. 크고 작은 섬들로만 이루어진 신안군의 복음화율은 35퍼센트로 전국 평균의 두 배에 이른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증도는 주민의 90퍼센트 이상이 예수를 믿는 전국 복음화율 1위의 섬이다. 마을 사람 거의 대부분이 크리스천으로 주민 2,200여 명인 작은 섬에 교회만 11개가 세워져 있다. 예로부터 섬사람들은 토속 신앙을 믿으며 살아왔다. 바다와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그들로서는 바다의 신, 바람의 신, 태양의 신이 그들을 지켜준다고 믿었다. 이런 오랜 전통 때문에 섬은 기독교 신앙이 전파되기 가장 어려운 곳 중 하나였다. 이런 곳에 어떻게 개신교가 들어가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워 전국 복음화율 1위의 섬을 만들 .. 2009. 8. 24. 이전 1 2 3 4 5 다음